세 명의 역사가

2014-12-27

kbs 겨울 프로그램 개편으로 인해서
제가 진행해오던 [고고 역사 속으로]는
이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햇수로 5년 동안 이 [아하 그렇구나] 코너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오늘은 마지막이기 때문에
조금 특별한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늘 갖게 되는 생각이 있죠, 우리가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은 그 해답을 제시한,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세 명의 역사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역사가는 1880년에 태어난 신채호입니다.
신채호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근대 역사학을 도입하고
확립한 역사가입니다.
그 이전에도 역사와 역사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단지 왕조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것일 뿐이지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부를 성질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그 모두가
역사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 한민족의 생성과 성장을 읽어낼 수는 없습니다.
신채호에 이르러서 비로소 우리 민족의 역사라는 개념이 확립된 것입니다.

신채호는 [독사신론]이라는 글에서
“역사란 아와 비아의 투쟁” 즉 우리 민족과
타 민족 사이의 끝없는 경쟁과 투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신채호는 조선 왕조가 멸망하고,
일본에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점에 살았죠.
그래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왜 조선 왕조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힘이 없었는가.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며 굴종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중국에게 굴종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며
살았던 시대, 즉 고구려 시대를 우리 민족의 이상향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려면 고구려 시대의 기상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와 비아의 투쟁”이란 것은 결국 역사 속에서
투쟁정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로벌 시대의 무한경쟁 속에 사는 우리에게
신채호의 외침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요.
또 한 명의 역사가는 1889년에 태어난 토인비입니다.
그는 [역사의 연구]라는 명저에서
“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정의합니다.
그에 의하면 역사 상의 어느 시대에나
문제는 있게 마련입니다. 시련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한 민족이나 문명이 그 시련을 이겨내면
성장, 발전하는 것이고,
이겨내지 못하면 쇠퇴, 멸망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테면 일제의 식민지라는 시대에 직면한
우리 민족이라면 그 상황 자체를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응전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응전 속에서 문명의 참란함이 꽃 핀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어느덧 우리는 분단 70년을 맞고 있습니다.
분단이야말로 우리 민족 최대의 시련이죠.
우리는 이에 제대로 응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마지막 한 명의 역사가는 1892년에 태어난 E.H.카아입니다.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 속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습니다. 언뜻 쉬워 보이는 이 문구는 사실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대화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려 시대에 묘청이 난을 일으킨 것은
자주의식의 발로 아니였느냐고 질문을 하지만,
역사는 그가 한낱 정치모략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대답을
해올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쿠데타를 용납할 수 없지만,
이성계는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백성들을 질곡에서 구해낼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을
해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답 앞에서 겸손해질 것을 카아는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역사토막 상식 [아하 그렇구나] 마지막 시간이어서
19세기 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세 역사가의 역사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깊이 성찰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Top
  • Print
  • Twitter
  • Facebook
prev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