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의 역사 현장, 운현궁  open the window of AOD

2011-11-01

조선조 26대 임금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많은 한국 근대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운현궁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과 역사의 향기를 즐긴다.

한국 근대사의 대표적인 유적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자리잡은 운현궁은 지하철 안국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정치 활동 무대로 한국의 근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서가 깊은 곳이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1863년부터 1873년까지 10년간 흥선대원군은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세도 정치 타파, 제도 개혁, 풍속 개혁, 또 인재 발굴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주로 그런 일을 논의한 곳이 바로 운현궁의 별채인 노안당 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흥선대원군의 업적은 있지만 지나친 쇄국 정책, 서양과 천주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주체적 개혁을 위한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도 있다.

12살에 왕위에 오른 고종을 대신한 왕도 정치
흥선 대원군은 12살에 왕위에 오른 어린 고종을 대신해 고종 즉위 10년간 적극적인 왕도 정치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863년 12월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그의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받으면서 흥선대원군의 사저였던 곳이 운현궁으로 불리게 되었고 건물도 궁궐 수준으로 개축되었다. 기록에는 운현궁이 가장 넓었을 때는 현재의 교동 초등학교에서 일본 문화원까지 1만평의 넓이였다고 하니 궁궐과 다름없는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4분의 1로 축소
흥선대원군은 1898년 79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운현궁에 머물렀는데 운현궁의 규모는 일본 식민지 시대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손되어 현재의 규모는 원래의 4분의 1 수준이다. 한 때 후손들에 의해 상속돼 관리돼 왔지만 어려움을 겪자 1993년부터 서울시가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왕실 문화의 흔적 재현
1993년 서울시가 관리를 맡은 이후 본격적인 보수 작업과 개축 작업을 거쳐 왕실의 모습을 재현하고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1997년에는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운현궁이 개방돼 많은 서울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조선 왕실의 흔적을 살피며 시간이 멈춘듯 조선의 궁궐을 거니는 즐거운 발걸음을 한다.

가마 체험과 일요 예술 마당
운현궁 안에는 당시 흥선대원군이 머물던 흔적들이 방마다 전시되어 있어 당시를 보는 듯 생생하다. 왕실의 혼례 때 입는 옷에서부터 서재 등은 조선 후기 왕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운현궁 곳곳의 모습에서 왕실의 흔적을 느껴보는 재미외에 가마를 직접 타보는 체험은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또 일요일에는 한국의 전통 국악 공연이 열리는데 가을 정취가 가득한 궁궐에서 해맑은 해금 소리를 듣노라면 도심 속의 오늘은 멀리 사라지고 조선 후기로 되돌아간 느낌으로 가득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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