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강성산 (姜成山)
성별  
생년월일   1931-03-03
출생지   함북 경성
주요 직책 전 정무원 총리
특성별 분류 기술관료
학력 만경대혁명학원 중퇴, 김일성종합대학, 체코 프라하공과대
프로필 기계공학을 전공한 북한의 대표적 테크노크럿으로 정무원 총리까지 올랐다. 김일성의 신임으로 실용주의 노선을 이끌어나간 대표적 인물.

체코 프라하 공대 유학 후, 남포시당에서 당료생활을 시작. 조직부 책임지도원, 과장 부장 등을 거치고, 중앙당 지도원과 과장 등을 거쳐 1969년 자강도 당 책임비서, 1969년 평양시 당 책임비서 등을 거쳐 1973년 평양시 인민위원장(시장 격)으로 지방 행정의 최고위급 책임자로 경력을 두루 쌓았다.

1973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했고, 1975년에는 정무원 교통체신위 위원장으로 중앙 부처의 장관급으로 올라섰다. 이후 정무원 부총리를 거쳐 1984년 정무원 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1986년 총리직에서 해임됐다. 이는 1985년 도입한 농업 생산 확대를 위한 일종의 인센티브제도라 할 수 있는 ‘농장포전개인책임제’와 관련이 있다. 집단농장제도에서 사유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개혁적인 제도였으나 1986년 중국에서 천안문사태가 일어났고, 이를 '사유' 또는 , '개인' 인센티브가 불러온 사태로 해석하면서 다시 농업집단화를 강화하는 '전인민적 소유제'로 전환하면서 강성산 총리까지 물러나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강성산은 이후 1992년 현직에 복귀했고, 이로 인해 북한이 다시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1994년에는 사위 강명도 씨가 탈북•귀순해 신변이상설이 끊임없이 나돌았으나 살아남았다. 그러나 강성산 총리의 시대는 김일성 사망과 함께 사실상 막을 내린다. 이른바 '유훈통치' 기간에는 총리직을 그대로 유지했으나, 1997년 홍성남 총리대리 체제가 들어섬으로서 실각이 예고됐다. 1998년 총리직에서 공식적으로 해임됐고, 이후 권력의 핵심에서 점차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였고, 현재에는 공식적인 대외 활동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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