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김계관 (金桂寬)
성별  
생년월일   1943-01-06
출생지   평북 운산
주요 직책 외무성 부상
특성별 분류 외교 북미관계
학력 국제관계대학 불어과
프로필

정통 외교관료로서 김영남-강석주의 맥을 잇는 '차세대 외교일꾼'. 외무성 제1부상. 대미(對美) 외교의 선봉. 6자회담 북한측 수석대표.

1969년 알제리주재 대사관 촉탁으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80년대까지 주로 외무성에서 연구원 또는 연구위원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들어 여러 외교현안이 제기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2년 2월 김용순 당중앙위원회 비서와 아놀드 켄터 미국무부 차관간의 뉴욕 고위회담에 수행원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면서 외교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1993년 북•미 고위급회담 차석대표, 1996년 북•미미사일회담 북측 대표단, 1997년 3월 북•미 준고위급회담 북측단장, 12월 4자회담 북측단장 등 주요 북미협상의 '고정멤버'로 활약했다. 이 당시 북한 인사로는 세계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 중 하나가 됐다.

2차 핵위기가 불거진 이후, 새로운 핵문제 해결의 다자간 대화 틀로 마련된 6자회담에도 북한측 수석대표를 맡아,북한 외교관리가운데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006년 1월에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수석대표와 베이징 회동에서 6자회담 재개의 열쇠가 된 위폐문제와 관련 북한이 국제규범을 준수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며 성격은 세심하고 온화한 편이라는 평가. 김영남 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외교부장 시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해 전문 외교관으로서 입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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