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제니퍼 린리 테일러는 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낯설고 먼 땅, 한국에 있는 딜쿠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이름의 집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 얘기였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아버지가 마지막 눈을 감으며 남긴 한 마디는 “내 고향에 가고 싶다.” 였습니다.
제니퍼가 아버지의 소중한 유품을 한국에 기증한 이유입니다. 그녀가 기증한 유품은 지금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물을 기증한 제니퍼 테일러의 아버지 브루스, 그리고
브루스의 부모님인 앨버트와 메리로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이야기입니다.
브루스 테일러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은행나무 옆집 딜쿠샤. 이 집은 그의 부모 앨버트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서울 생활을 위해 지은 집으로, 1942년 그들이 강제로 서울을 떠나게 될 때까지 늘 ‘기쁜 마음의 궁전’이 되어준 곳입니다.
주춧돌에 새겨진 ‘딜쿠샤 1923’ 이라는 문구가 발견되기 전까지 ‘귀신 나오는 집’ 이라 불리던 정체불명의 집.
이 딜쿠샤의 주인이었던 테일러부부는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찾으려 애쓰는 한국인들의 모습과 3·1운동을 목도했고 앨버트 테일러는 일제의 눈을 피해 3·1 독립선언문을 처음 해외로 타전하는 등 당시 조선 민족의 핍박에 관해, 있는 그대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힘썼던 외국 언론인으로 한국 역사 속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서울을 떠난 후에도 이들의 집 ‘딜쿠샤’는 독립운동과 광복, 이후 6·25전쟁의 아픔과 폐허를 딛고 빠르게 일어서는 서울의 근현대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며 아흔 여섯 해를 맞았습니다.
태평양 너머에 내 나라와 내 집이 있다고,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 달라고 했던 앨버트 테일러. 그리고 서울의 ‘딜쿠샤’에서 살던 시절에 관한 회고록 ‘호박목걸이’를 집필한 메리 테일러.
한국인만큼 한국을 사랑했던 이들 부부의 삶의 궤적을 따라, 우리가 알고 있던 또는 잘 몰랐던 독립운동의 이면을 살펴보면서 주권을 유린당한 참혹한 시대에도 아픔과 절망에 굴하지 않고 일어섰던 우리의 민족정신과 지금껏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것을 지켜 왔는지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Photo : SEOUL MUSEUM OF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