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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윤흥길

2019-02-19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오선생은 작품 속 화자로 경기도 성남에 자리한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어렵게 성남 주택가에 집을 마련했지만

월급만으로는 형편이 빠듯해서 방 하나를 세놓게 되는데요,

그 방에 세든 사람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 권씨의 가족입니다.



보아하니 권씨의 구두 닦기 실력은 보통에서 훨씬 벗어나 있었다.

사용하는 도구들도 전문 직업인 못잖이 구색을 맞춰 일습을 갖추고 있었다.


마침내 도금을 올린 금속제인 양 

구두가 번쩍번쩍 빛이 나게 되자

권씨의 시선이 내 발을 거쳐 얼굴로 올라왔다.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의 눈이 자기 구두코만큼이나 요란하게 빚을 뿜었다.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1971년 대규모의 도시 빈민 투쟁이었던 광주 대단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시내에 무허가 판자집을 정리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군에 대단지를 조성해 철거민을 이주시킨 정책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행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가 않아 철거민들이 투쟁에 나섰던 것입니다. 작가 윤흥길은 이 사건을 소설 속에 간접적인 배경으로 드러내고 그와 연관이 있는 권씨를 등장시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내가 병원에 다니러 가는 편에 아이들을 죄다 딸려 보낸 다음,

나는 문간방을 샅샅이 뒤졌다.


가장 값나가는 세간의 자격으로 장롱 따위가 자리잡고 있을 때,

꼭 그런 자리에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들이

사열받는 병정들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갈하게 닦인 것이 여섯 켤레,

그리고 먼지를 뒤집어 쓴 게 세 켤레였다.

모두 해서 열 켤레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일곱 켤레를 골라 한꺼번에 손질을 해서 

매일매일 갈아신을 한 주일의 소용에 당해온 모양이었다.


잘 닦여진 일곱 중에서 비어있는 하나를 생각하던 중 나는 한 켤레의 그 구두가

그렇게 쉽사리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딸딸하게 깨달았다.




작가 윤흥길(1942.12.14. 전북 정읍) 

: 1968.「한국일보」<회색 면류관의 계절> 발표

2001.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소설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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