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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5•18 기념일 하루 앞둔 17일 광주서 전야 행사

#뉴스플러스 l 2019-05-17

뉴스

ⓒYONHAP News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광주•전남 일원에서 신군부 집권 음모에 저항한 민중항쟁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장기 집권이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기대감이 커졌고, 이는 '서울의 봄'이라고 일컬어졌다.

그러나 곧 신군부가 대두하면서 '서울의 봄'은 전국적인 군부 반대 시위와 집회로 이어졌다.


이같은 상황은 1980년 5월에 절정을 이뤘다.

정부는 5월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국적으로 체포 열풍이 불었다.

광주에는 공수여단이 계엄군으로 투입됐다.

계엄 전국확대 첫날인 5월18일 전남대 시위과정에서 시위대와 계엄군의 충돌이 발생했다.

이것이 5.18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다.


광주에서 계엄군은 무리한 진압으로 시위대는 물론 일반시민에게도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이에 시민과 시위대가 합세해 계엄군에 맞서면서 사태는 악화됐다.

급기야 계엄군의 발포가 있었고, 사상자가 급증했다.

이에 시위대가 무기 탈취,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 획득 등의 방식으로 무장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민군'은 21일 계엄군을 밀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5월27일 계엄군이 작전을 개시해 시민군의 근거지인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했다.

이때 시민군 다수가 희생됐고, 광주민주화운동은 진압됐다.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2백 명 이상 사망했고, 행방불명자는 4백명에 육박한다

부상자도 5천 명이 넘어 총 피해자는 7천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공식 집계에 따른 것으로 실제 피해는 더 클 수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당초 '광주사태'란 이름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칭을 바꿨고,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 '5.18민주화운동' 등으로 변화를 겪었다.

명칭에서 광주를 뺀 것은 지역을 넘어 광범위한 시민의 참여가 이뤄졌음을 감안한 것이다.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법률에서 시작해 관련 법률도 다수 제정됐다.

이에 따라 피해자 보상, 가해자 법적 처벌 등이 이뤄졌다.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에서 국가 차원에서 재평가가 이뤄졌다.

또 1997년에는 5월18일이 국가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희생자 묘역인 망월동 묘지는 5.18국립묘지로 조성됐다.


이같은 변화는 물론 5.18민주화운동 정신 계승 노력이 꾸준히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아직 진상 규명에 미진한 부분이 있고, 그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시도도 있다.

이에 따라 지금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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