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노찬성과 에반 - 김애란

2020-07-21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찬성이는 철제울타리에 묶여있는 개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할머니 심부름으로 다시 휴게소에 갔는데

그 개가 여전히 그 자리에 묶여 있는 겁니다.



전에도 찬성은 그런 개를 본 적 있었다.

한밤중 갓길에 버려진 뒤 앞차를 향해 죽어라 달려가던 개들이었다.

찬성은 휴게소에 남겨진 개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찬성이 컵에 남은 콜라를 끝까지 쪽 빨아먹고 손을 집어 넣었다.

흰 개가 찬성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찬성의 몸냄새를 맡았다.

그러곤 뭔가 결심한 듯 찬성의 손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대다 혀를 내밀어 얼음을 핥았다. 

그 순간 물컹하고, 차갑고, 뜨뜻미지근하고, 간지럽고, 부드러운 뭔가가 찬성을 훑고 지나갔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찬성이 손바닥은 얼음은 사라지고 손에 엷은 물자국만 남아 있었다.

동시에 찬성의 내면에도 묘한 자국이 생겼는데 그게 뭔지 몰랐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별이 눈에 잘 보이면 밤이 깊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순수한 사람의 모습이 빛나면 순수함 이 없는 세상에 비정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작품은 찬성이와 에반의 삶을 비극으로 이끈 경제적 불평등,  무관심,  이기심,  소외에 관해서는 직접적으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데요. 하지만 위험한 갓길을 걸어가는 찬성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다정한 아이는 왜 이렇게 가난과 외로움을 감당해야 만 하는가. 다정한 에반은 왜 유기가 되었고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찬성이와 에반의 행복을 빼앗아간 세상의 엄혹함이 더 절실하게 우리의 마음을 와 닿습니다. 



에반의 젖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파들거렸다.

찬성이 에반의 입매, 수염, 콧방울, 눈썹 하나하나를 공들여 바라봤다.


“있잖아, 에반.  나는 늘 궁금했어.

 죽는게 나을 정도로 아픈건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걸까?....

 에반, 많이 아프니?  내가 잘 몰라서 미안해...

 있잖아, 에반.  만약에 못 참겠으면...

 나중에 너무 힘들면 형한테 꼭 말해.  알았지?” 




작가 김애란 (1980. 인천)

:  데뷔-2002. 단편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

수상-2005. 제38회 한국일보 문학상 등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