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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 <왜지나무> 황연

#글로벌 코리안 l 2020-10-23

글로벌 코리안

사진 제공 : 황연

제22회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 황연 

지난 시간에 이어 제22회 올해의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자 중 시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중국동포 황연 씨를 만나본다. 


- 황연 作 “왜지”나무 - 

(제22회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


주말 오전이면 아버지는 딴 사람이 된다

평생 빨랫감은 뒤집은 채 산더미처럼 쌓아 놓으시고

설거지 한 번 도와주신 적 없던 아버지가 딴 사람이 된다


자차로 반 시간이 걸려서 도시와 한참 떨어진 외진 마을에는

간혹 지나가는 누군가의 자동차 타이어에 깔려 터지고 말라붙은

산 구렁이 껍데기가 한여름의 길바닥 복판에 종종 널려있다


돌길을 지나 작은 강을 건너 조금 걸어가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으셨고 아버지가 태어나신 낡은 벽돌집이 보인다


그곳엔 해가 들지 않는 앞마당과

오래도록 잡초만 무성했던 뒷마당이 있고

함경도에선 “왜지”나무라고 부르는

몇 십 년 전의 이 계절 할아버지께서 심으신 자두나무가 있다


아버지는 앞뒷 마당에서 무너진 담장을 다시 쌓고

작은 밭에 파를 심고 오이 모종을 고정하고 무 싹을 솎아낸다 

잔디를 다듬고 잡초를 뽑는 긴 시간동안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네 세 형제자매가 그 집을 떠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거의 이십년 동안 비워진 집 마당에서

아버지는 대가 없는 노동을 사명감을 안은 듯이 열중하신다


그저 티셔츠가 흥건해질 정도로 그렇게 땀을 흘리시며

당신의 아버지께서 그러셨듯 수걱수걱 농사일에 열중하신다

볕에 데어 벌게진 팔뚝에 찬 수건 하나 올리시고

새참도 드시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나는 늘 생경하다


집에서나 엄마 일 좀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시라

야채는 사 먹으면 되니 몸 혹사 시키지 마시라 철없이 굴면

아버지는 그저 늘어난 옷섶을 만지며 웃는다


시골 동네와도 한참 떨어진 외진 그곳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심고 키우신 “왜지”나무 밑에서

과거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께 그러셨듯이

탐스럽게 달린 열매 하나를 따 내게 건네신다


중국 지린성 출신 황연 작가 

당선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듣고 도저히 믿기지 않아 담당자에게 몇 번이나 물어야 했다는 황연 작가. 황 작가는 중국 지린성 연변주에서 연길시에서 자랐다. 시 제목이기도한 “왜지”나무는 함경도 말로 자두나무를 뜻한다. 아버지 고향인 지린성 시골마을에서는 함경도 북한 사투리를 종종 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자두나무 보다는 ‘왜지’나무라고 했다. 시에 나오는 ‘수걱수걱’이란 말도 북한 사투리로 뭔가를 꾸준하게 하거나 무언가 열중하는 상황을 뜻한다. 


아버지의 마음과 모습을 담담히 담아낸 시 

황연 작가의 부모님 두 분 모두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고 계신다.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두 분은 황 작가에게 더없이 소중한 분들이다.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태어난 고향 집에서 텃밭을 일구신다. 주말에 쉬면 좋겠지만 기꺼이 노동을 하시는 아버지의 보며 “왜 쉬지 않느냐”고 여쭤봤지만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어머니께 여쭤보니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을 아버지만의 방식으로 푸시는 것”이라는 답을 주셨다. 

황연 작가가 모르는 시절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아버지께서 여전히 그리워하는 것을 느꼈고, 그 마음을 시로 옮겼다. 


황 작가에게 글쓰기란 ‘기록’

황연 작가에게 글쓰기는 ‘기록’이다. 글로 쓰면서 생각을 좀더 정립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여긴다. 창작에 대해서도 시간을 정해서 책상에 앉아서 쓰기 보다는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메모해 놓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그렇게 적어놓은 것들을 나중에 첨삭해 써놓은 시가 몇 편 더 있다. 

재외동포문학상이 있다는 것은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됐다. 제출 기한 마지막 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고 급하게 <“왜지”나무>를 보냈는데 당선이 됐다. 


극본도 쓰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아요

20대 중반의 황연 작가는 지난 2019년 9월에 한국에 왔다. 현재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에 있고 영문학과에 재학 중에 있다. 석.박사 과정에 있지만 박사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남아있다.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하면 대학에 들어갈 생각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극본도 좋아하고 연극도 좋아해서 그쪽으로 시나리오를 쓰지 않을까 싶다고 전하는 황연 작가. 틈틈이 좋은 작품 활동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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