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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하녀 마리사 - 천명관

#라디오 책방 l 2022-08-09

라디오 책방

ⓒ Getty Images Bank

나는 타오르는 불길 너머에 숨어있는 진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갈수록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남편의 정부를 골라내는 일에 희열을 느꼈다면 

틀림없이 정신나간 여편네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명단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름을 들여다보며

나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그게 누군지 아세요, 토마스? 

오! 그건 바로 나디아 울이었어요.


- 방송 내용 중 일부 



경찰이 나를 살인범으로 모는 건 아닐까?

게다가 동기도 충분하잖아.

그런데 요한나는 우리가 바람 피운 걸 어떻게 알아냈지?

점성술이라도 쓴 건가?


그나저나 나디아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놀랄까?

어쩌면 잘 됐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너무 멍청하다고,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것 같군.

와인 한 병을 혼자서 다 마신데다

이런 끔찍한 상황이 닥쳤으니 그럴만도 하지.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

자칫하면 살인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고.

그래, 차라리 마리사를 부르는 게 낫겠어.

그녀라면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거야.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내용을 읽기 시작하면 마리사가 마치 주인공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리사가 언제 나오는지 기다리게 되는데 사실 이 서사의 주인공은 요한나와 토마스였고 마리사는 부수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마지막에 이르러서 마리사가 주인공격인 두 인물의 운명을 바꿔 버립니다. 이러한 반전이 결말의 통쾌함을 배가시키는데요. 마리사는 정말 우연히 포도주병을 바꿔 놓은 것일까요? 작중에 마리사에 관한 설명은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사위를 살인미수로 신고한 이력이 있었다고 하죠. 덜렁대고 호들갑스러운 면모 뒤에 죄에는 침묵하지 않으려는 단호한 성격이 사실 담겨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 이 독살극의 실제 배후가 사실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아니었을까. 물론 무엇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요.



그런데 맙소사! 손에 들고 있는 건 술병 아녜요?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아침부터 그렇게 술을 마셨어요?

그렇게 속살을 드러내놓고 술병을 들고 있으니

영락없이 그 로마의 악녀....이름이 뭐라고 그랬죠?

마님의 전생 말예요, 독살했다는.

어쨌든 지금 마님이 바로 그 꼴이라고요.


그리고 코르크 마개를 딴 채 와인을 밖에 그냥 뇌두는 법이 어디 있어요?

내가 마개를 잘 막아서 냉장고에 있던 것과 바꿔치긴 했지만 말예요.


어머! 그러고 보니 주인님이 돌아와 계신지도 모르고 떠들고 있었네.

여행은 즐거우셨....에구머니나! 주인님 코에서 피가 흘러요.

아무래도 비행기를 너무 오래 탄 모양이예요.


여보세요, 병원이죠? 네? 오토씨네 생선가게라고요?

어이쿠, 하나님. 전화가 또 잘못 간 모양이네.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람!




작가 천명관 (경기도 용인 1964년 ~ ) 

 - 등단 : 2003년 단편소설 [프랭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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