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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최인욱

2022-11-29

ⓒ Getty Images Bank

“나 역시 팔자소관으로 작년에 상처를 하고 아직까지 홀애비로 지냅니다만

소생이라고는 아직 하나도 없고 시부모도 없는

단 두 식구 살림이니 별로 고되거나 할 바는 없지만

내가 나이 좀 많아서 마음에 어떨는지~”


사나이는 말끝을 흐리면서 연이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연이는 그저 가슴이 두근거렸을 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뒤 사나이는 언제나와 같이 트럭을 타고

연이의 집 앞을 자주 드나들었으며

때로는 연이의 방에서 하룻밤씩 쉬어가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로부터 석 달이나 지난 오늘에 연이의 뱃속에는

또 하나 작은 생명이 커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돌각담 담장 너머로 개나리가 노랗게 핀 어느 날,

돌이는 돌각담 밑에서 놀고 있었다.

그는 준이가 공부할 때면 곁에서 한두 마디씩 들은 것이 기억났다.


“제 삼십일과,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돌이는 이리저리 거닐면서 커다란 소리로 글 읽는 흉내를 내고 있는데 구길이가 왔다.


“돌이 너희 엄마 시집간다며?”


“응, 우리 엄마는 시집간다”


“너도 가나?”


“응, 나도 간다.  할매도 간다” 


“애~거짓말!”


“참말이다”


돌이는 입을 한번 삐죽하고 나서 이내 또

글공부에 대한 흉내를 내며 저 혼자서 신작로 저편으로 걸어간다.



# 인터뷰. 방민호

여성이 마음에 들어서 재혼을 하려 하는 남자라면 당연히 내가 새 아빠가 돼서 잘 보살펴 주겠다, 같이 열심히 살아보자 해야 될 텐데 이 남자가 아이는 나중에 데려가자 하는 그 장면에서 정말 가슴이 저도 덜컹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연이는 어떻겠어요. 그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위기의 상황인데 작가가 왜 이런 여성을 그려 놓았을까 일제 강점기 때 또 해방 직후에 여성들에게 개가를 한다든가 팔자를 고친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그렇게 쉽게 용인되지 않는 그런 불합리한 사회적 조건이었고 해방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인들에게 어떤 고통과 시련이 있었는지를 바로 이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서 담담하지만 아주 정곡을 찌르듯이 그렇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이 됩니다.



돌각담 담장 너머로 개나리가 노랗게 핀 어느 날 한낮이 훨씬 겨웠을 때.

돌이네 집앞 신작로에 재목을 가득 실은 트럭이 한 대 정거하였다.

운전대에서는 예의 사나이가 다 해진 가방을 들고 돌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얼마쯤 지나서 사나이는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한 연이를 앞세우고 나왔다.


연이는 차에 올라서야 비로소 눈으로 돌이를 찾았다.


“복돌아!”


목메인 소리로 한 마디 불렀으나 돌이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할매 하고 있으면 내 꼬까옷 사가지고 올게, 하고

눈물을 머금고 타이르던 돌이, 돌이는 어디로 갔는가.    


차가 막 떠나려 할 무렵, 연이가 불러도 대답이 없던 돌이는 

어느새 그렇게 재빠르게 올라탔는지 차짐 위에 올라가 자그만히 앉았는 것이

그제야 발각이 되어 조수의 손으로 끄집어 내려졌다.


차가 위잉 떠나자 돌이는 기를 쓰고 트럭의 뒤를 쫒아갔으나

거리는 점점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연이는 번연히 그런 줄도 저런 줄도 알면서, 알면서도 간다.

차가 가는 대로 몸을 맡겨야만 되었다.




작가 최인욱 (경상남도 합천, 1920~1972.04.12)

    - 등단 : 1938년 단편 소설 [시들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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