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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캐시 - 최지애

2023-11-28

ⓒ Getty Images Bank
어젯밤 H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H가 느닷없이 걔는 뭐하고 지내?  그 여자 계속 사귀나? 
하고 새삼스럽게 묻지만 않았더라면.
그 개새끼, 네 돈 아직도 안 갚았지? 하고 내 아픈 곳을 건드리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 그의 인스타를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H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모두가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다고.
사는 게 애처롭기는 다들 매한가지라고.
그렇게 뻔하디 뻔한 상투적인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다.
너랑 연애는 도저히 안 되겠다.  완전 불감증인데?
나는 하고 싶은 많은 말을 안으로 삼키고 대충 농담으로 얼버무렸다.
어쩌면 H가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걸 알아도 실은 균형 잡기가 어려운 게 인생이니까.      

자리에 앉아 그의 SNS에 접속했다.
비밀번호는 도대체 뭘까?
끝내 알 수 없었다.
그의 비밀번호를 알아내 견고하다 믿고 있는 그들의 세계를 공중분해하고 싶었다.
나는 별 수 없이 나의 인스타로 로그인 해 들어갔다.
그곳에는 지난 이 년 동안 그들이 공유한 시간이 있었고,
그 이전에 나와 그가 공유한 시간이 존재했다.
한 순간 모든 걸 지워버리고 싶었다.
오랜 망설임 끝에 계정 삭제 버튼을 눌렀다. 


# 인터뷰. 전소영
작품 제목이 러브 앤 캐시입니다. 이 작품은 사랑이 돈과 교환 관계 안에 놓여 있는 풍경을 배경 삼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가족과 이별을 했던 주인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대출업체에 취직을 했고, 거기서 번 돈으로 연인을 내조했지만 결국 돈 문제로 사랑이 파국을 맞고 말았죠. 주인공의 인생은 돈이 쥐고 휘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에 대한 미련과 기대가 없어져서 SNS 계정을 삭제한 것이죠.


단숨에 끝나 버릴 그 일을 왜 오래도록 하지 못했을까.
얼마나 더 한 일들이 남아 있을까.
하지만 아프지 않은 삶은 없었다.
아니, 아프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 누구의 삶도 될 수 없었다.

행복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의 그림자가 길게 느껴졌다.
여태 그래 왔듯 앞으로도 이월 되거나 체납된 사랑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도산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목격할 것이다.

원금을 갚아야 할 날은 서서히 다가올 테지만
그들은 원금은커녕, 불어 가는 이자조차 탕감할 방법을 알지 못할 터였다.
사랑의 부채를 떠안고 사람들은 쉽게 파산 신고를 하고,
그럼에도 사랑의 빈곤함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을 것이다.

혹은 빈곤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사랑은 높은 이자율과 원금 상환 불가능을 무릅쓰고 지속되곤 했다.
이 또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작가 최지애 (서울, 1980~)
    - 등단 : 2014년 단편소설 [달콤한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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