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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비오는 날 - 손창섭

2018-07-10


- 방송 내용 중 일부 -



#인터뷰 : 전소영 문학평론가

전쟁의 상처를 온몸으로 견뎌 낸 작가가 손창섭이었기 때문에 인간을 좋아하지 않고, 세계를 비판하고, 이런 쪽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설에 희망이 없는 사람들, 전망 없는 세계의 우울한 모습을 그려내되 현미경을 댄 것처럼 아주 세밀하게 묘사를 했는데요, 그 덕분에 손창섭의 소설은 한국문학사상  가장 기이하고 우울한 소설이 되었습니다.


____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욱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원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



장마로 벌이도 시원찮아서 

그냥저냥 날짜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동욱과 동옥이 걱정돼

퍼붓는 비를 무릅쓰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왠 사내가 새집주인이라면서

동욱과 동옥은 어리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____


얼굴이 고만큼 밴밴하고서야 어디 가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냐는 말에

이상하게 원구는 정신이 펄쩍 들어,

이 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 하고 대들 듯한 격분을 마음 속 한 구석에 의식하면서도,

천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듯한 육체의 중량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말없이 발길을 돌이켰다.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 하는 흥분의 소리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 자기를 향하고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에 오한을 느끼며

원구는 호박 덩굴 우거진 밭두둑 길을 앓고 난 사람모양 허전거리는 다리로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원구는 그 분노가 집주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임을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동욱과 동옥생각에

그렇게 우울해했던 겁니다.





작가 손창섭 (1922년~2010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 1952년 단편 <공휴일>, 1953년 <사연기> 발표하면서 등단.

1955년 단편 <혈서>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등

1953년 문예지에 <비오는 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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