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내용 중 일부 -
해방촌 고개를 추어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
#인터뷰 : 방민호 서울대학교 교수
해방촌은 해방 직후 일제 강점기 때 살길을 찾아 나갔던 귀향민들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곳이겠지만 6.25전쟁 이후에 월남에 온 사람들이 다 겹치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굉장히 복작복작한 동네, 이게 당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런 동네다, 해방촌은 그렇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죠.
땅마지기 꽤나 지니고 풍족하게 살던 어머니에게
이 곳 판잣집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산등성이를 악착스레 깍아내고
거기에다 게딱지 같은 판잣집들을 다닥다닥 붙여놓고는
‘해방촌’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어머니에게 그곳이 ‘해방촌’일 수 없었던 겁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철호)
“하 참, 딱한 아저씨네. 어쩌다 오발탄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곳도 모르게”
운전수는 기어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철호는 까무룩이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작가 이범선 (1920.평남 신의주 ~1982)
: 데뷔 -1955. 「현대문학」<단표>로 등단
수상- 1961. 제5회 동인문학상 등
작품 – 학마을 사람들(1957), 토정비결(195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