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내용 중 일부 -
창남이는 양복 저고리를 벗었다.
그는 샤쓰도 적삼도 안 입은 벌거숭이 맨몸이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고 아이들은 깔깔 웃었다.
“한창남! 왜 샤쓰를 안 입었니?”
“없어서 못 입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의 무섭던 눈에 눈물이 돌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웃음도 갑자기 없어졌다.
가난! 고생!
아아, 창남이 집은 그렇게 몹시 구차하였던가.... 모두 생각하였다.
#인터뷰 : 아동문학평론가 김유진
‘어린이’지는 한국 아동문학에 중요한 한국 아동문학을 탄생시킨 토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린이’지를 통해 어린이 문학이 꾸준히 창작될 수가 있었습니다.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로 존중하고,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어린이를 위한 문학을 만들고 문화 활동까지 한 것 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현실을 잘 담은 어린이 문학 모습을 최초로 보여준 동화가 바로 이 방정환의 만년샤츠라고 생각합니다.
“아아, 선생님...”
창남이의 소리는 우는 소리같이 떨렸다.
그리고 그의 수그린 얼굴에서
눈물 방울이 뚝뚝 그의 짚신 코에 떨어졌다.
“저희, 저희 어머니는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눈이 멀으셔서 보지를 못하고 사신답니다.”
체육 선생님의 얼굴에도 굵다란 눈물이 흘렸다.
와글와글 하던 그 많은 학생들도 자는 것같이 고요하고,
훌적훌적, 훌적거리며 우리 소리만 여기서 저기서 조용히 들렸다.
소파 방정환 (1899년 11월 9일, 서울 ~ 1931년 7월 23일)
:1922년 어린이날 제정
1923년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 『색동회』 조직
1923년 한국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 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