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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잘자요 너구리 - 최상희

2019-05-28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있잖아요, 아저씨.

 실연한 다음에는 사귄 기간만큼 

 헤어진 사람을 잊어버릴 수 없대요.

 그게 회복의 최소 시간이래요.   

발레를 잊는 데는....얼마나 걸릴까요?“


“십 년?”  



최상희의 소설 <잘자요 너구리>는 15살 때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었다가 10년 만에 깨어난 소년이 우연히 밤중에 너구리를 찾는 여자아이를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여자아이는 다섯 살 때부터 10년이나 발레를 했지만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그만두게 됐습니다. 

십 년의 세월을 잃어버린 두 사람은 매일 산책로를 걸으며 친구가 됩니다. 



“아저씨, 그랑주떼 잘 하는 비결이 뭔지 알아요?”

“피나는 연습?”

 풋.

“뭔데?”

“그랑주떼 전 동작을 잘 하는 거에요. 도약을 위해 힘을 모았다가... 

그 힘으로 뛰어오르는 거에요. 망설이지 말고 단숨에. 자 봐요!“


공중에서 온 몸을 날개처럼 활짝 펼친 여자애가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순간 와아아, 하는 함성이 들려오고 펑펑 폭죽이 터져 대낮처럼 밝아졌다. 

사방에서 싱싱한 풀 냄새가 풍겨 오고 일제히 개구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조용히 박수를 쳤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십 년의 시간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풀숲 사이 너구리도 우뚝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인터뷰 : 아동문학평론가 김유진 

10년간 식물인간이었다가 깨어난 소년, 그리고 발레를 하는 순간 지상에 묶여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소녀, 모두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발레를 할 때 소녀는 진짜 자기 자신을 느낄 겁니다. 그렇게 소녀의 존재가 반짝 하고 빛나는 순간을 소년이 발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누구에게나 아쉬운 시간, 후회되는 시간이 있을 거에요. 그 시간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 상실을 위로하는 방법,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가 최상희(1972년~ 전라북도 출생)

데뷔 – 2009년 수필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

수상 – 2011년 장편소설 ‘하니와 코코’ 제 5회 블루픽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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