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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육장쪽으로 - 편혜영

2019-06-11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그는 회사 동료들에게

‘전원주택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인의 꿈이 아니겠느냐’고 큰소리쳤고,

자신의 집은 산을 배경으로 한,

경사진 지붕의 새하얀 단층집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전원주택 생활은 상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고속도로를 두 시간이나 달려야 도착하는 마을은 암흑 자체였다.

그의 차가 뿜어내는 전조등 불빛이 유일하게 길을 밝혔다.

늦은 밤, 마을로 들어설 때면 산은 덩치 큰 개처럼

시커멓게 누워있다가 재빨리 짙은 그림자를 내밀었다.


그나마 의지가 되는 것은 사방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마을에 제대로 들어섰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개들이야말로 마을의 유일한 가로등이자 보안등이었다.



 #인터뷰  :   방민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 소설에서 사육장이 의미하는 바가 너무나 명백하죠. 즉 주인공 남자가 빚을 잔뜩 지고 있고 언제 집이 압류당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인데, 인근에 사육장이 있죠. 사나운 개들이 살고 있는 사육장이라는 곳은 한마디로 말해 자본주의라는 정글을 사육장의 야수같은 개들의 이미지로 오버랩시키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거죠.     



개들이 워낙 사방에서 짖었기 때문에

북쪽으로 가면 사육장은 남쪽이 아닌가 생각되었고,

우회전을 하면 좌회전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는 점차 자신이 찾는 것이 사육장인지,

아이를 치료할 병원인지,

아니면 아이를 물어뜯은 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후회를 할 새도 없이 

개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소리는 도시 전체가 사육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산만하게 흩어져서 들려왔다.




작가 편혜영 (1972. 서울 출생)

:  데뷔-2000. 서울신문 신춘문예 ‘이슬털기’

수상-2018. 미국 문학상 ‘셜리 잭슨상’ 장편부문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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