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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 김연수

2020-01-28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그, 그, 그쪽으로 멧돼지 내려간다.  잡아라!”

산사태라도 일어난 듯 

쌓인 눈이 아래쪽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눈을 뿌리며 둔덕 위로 나타난 멧돼지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 때 둔덕을 따라 새끼들을 대피시키느라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못하던 멧돼지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면서

그저 총으로 겨낭하기만 했다.


멧돼지는 뜨거운 콧바람을 내쉬면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나를 본숭만숭하고는 새끼들이 사라진 쪽으로 달려갔다.



계속 멧돼지 일가를 쫓아가는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산골짜기를 울렸습니다.

진짜 사냥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멧돼지에 압도당한 개들만 요란하게 짖어댈 뿐,

삼촌과 멧돼지는 옴쭉달싹하지 않고 서로 쏘아볼 뿐이었다.

삼촌은 멧돼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천천히 안전장치를 풀었다.

관절이 부러진 새끼가 엉금엉금 어미쪽으로 기어갔다.


“내려온다, 쏴라 쏴” 

도라꾸 아저씨가 소리쳤다,

어미 멧돼지가 삼촌을 향해 달려들었다.


삼촌은 총을 겨눴다.

삼촌은 멧돼지의 진행 방향을 따라 총신을 내렸다.

삼촌은, 그러나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인터뷰. 삼촌이 총을 쏘지 못한 이유 –전소영 문학평론가 

삼촌은 어느 날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 때문에 죽음조차도 불사하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만 이 경험으로부터 그가 깨달은 것은 ‘사랑이 위대하다’가 아니라 ‘생명이 그만큼 끈질기고 강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연인의 바람과 의지를. 삼촌은 숲에 사냥을 갔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멧돼지의 눈에서도 읽게 되고. 연인과 멧돼지를 겹쳐 보면서 끝내 총을 쏠 수가 없었죠. 




작가 김연수 (1970. 경상북도 김천 )

:  수상-2009. 제33히 이상문학상 대상

2003.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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