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내용 중 일부 -
3월 기획특집 <문학 속 여성이야기>
제3편 박완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말이 자수지.
그 놈이 이 에미 말을 들을까? 차라리 넘어오다....“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고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나는 다음 말을 알고 있다.
나도 방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넘어오다 차라리 잡히거나 총에 맞아 죽었으면 하고....
간첩이 된 오빠와의 만남이 몰고 올 사건이 두려운 나머지
18평 작은 집의 평화로움이 너무 소중한 나머지
어머니와 나는 마녀보다도 더 잔인해졌다.
연이엄마의 가슴에 짓누르는 고통은
‘월북한 오빠’와 그 오빠로 인한 남편의 태도였습니다.
이미 입속엔 빼버릴 틀니도 없는데.
빼버릴 틀니가 없기에 그 고통은 절망적이다.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여태껏 얼마나 교묘하게 스스로를 이중, 삼중으로 속이고 있었나를.
내 아픔은 결코 틀니에서 비롯된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는 내 아픔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내 아픔을 정직하게 신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교하고 가벼운 틀니는 지금 손바닥에 있건만
아직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또하나의 틀니의 중압감 밑에
옴짝달싹 못하고 놓여있다.
작가 박완서 (1931.10.20. 경기도 ~ 2011.1.22.)
: 데뷔 – 1970. 소설 <나목>
수상 – 2011. 금관문화훈장
2006. 제16회 호암상 예술상 수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