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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망보류 - 이범선

2020-08-25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좋은 것을 먹고 그리고 푹 쉬어야 합니다”

벌써 석달 전 그러니까 여름방학 전에 의사가 하던 말이다.

상당히 병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런데 어떻게 나와 다니느냐고 하며

창가에 비춰 보여주는 사진은 흠투성이었다.

그는 의사가 손끝으로 여기저기 지적하는 그 담배 연기 같은 흠을 보며

어쩐지 갑자기 폐가 근질근질 가려웠다.

이만큼씩이나 큰 결핵균들이 목구멍으로 꿈틀꿈틀 기어 올라오는 것 같아서

자꾸 헛기침을 했다.



철은 벌써 5일째 결근중입니다.

학교에는 설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각혈은 멎지 않았습니다. 



철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대량으로 각혈을 하였다.

금시 얼굴이 파래졌다.

아내는 약봉지를 펴 들었다. 철은 약간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며칠이오?”

“24일이야요”

아내는 유난히 길어진 것 같은 그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기침을 했다.

“보류하우” 

“뭐요?”

“낼까지는...”

“낼까지 뭐요?” 

“낼까지는... 죽었다고 하지 마우”



# 인터뷰. -방민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내가 곗돈을 3번을 타야 하는데 동료교사들의 행태를 봤을 때는 내가 만약 폐결핵에 걸려 죽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곗돈 절대로 안 내줄 것이다. 그러니 사망을 알리는 것을 보류해라, 참 기가 막힌 얘기죠. 얼마나 이 철이라는 인간이 정말 가족의 생계라는 문제 안에 묻혀 있는가, 또 그 사회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인가, 이런 문제를 아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사망 보류> 라고 하는, 사망을 통지하는 것을 보류하는 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 이범선 (1920.평남 신안주 ~1982)

: 데뷔 -1955. 「현대문학」<단표>로 등단

 수상- 1961. 제5회 동인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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