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내용 중 일부 -
아버지의 외투를 발견한 건
아버지가 죽고 난 뒤 병실을 정리하면서였다.
문이 비틀어져 잘 열리지 않는 합성목 옷장 속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입고 온
회색 여름 양복과 와이셔츠, 하늘빛 실크 넥타이와 함께 들어 있었다.
외투는 짙은 갈색이었고 무거워보였다.
보이기만 그랬을 뿐 옷감이 얇고 길이가 짧아
오버코트라기보다는 봄가을에 입는 톱코트에 가까웠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짧은 가을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아침 저녁으로는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방으로 발길을 돌리려다보니
행거 맨 앞자리에 걸린 외투가 눈에 띄었다.
실밥이 다시 튀어나와 있었다.
실로 꿰맨 자리를 따라 줄지어 비어져 나왔는데
나무의 실뿌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많았다.
외투는 전보다 더 커지고 새옷 같은 느낌을 주었다.
기분이 나빠졌다.
뻔뻔스럽고 혈기 넘치는 장년의 바람둥이에게
잘 어울릴 옷처럼 보였다.
외투곁에 있던 옷들은 왠지 후즐근하고 구겨진 것이
원정군 병사에게 흠씬 두들겨 맞거나 약탈을 당한 시골 농부 같았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누구에게나 그런 물건이 하나쯤 있을 수 있죠. 늘 가지고 있다 보니까 결국 나 자신과 닯아 버린 물건. 작중 에서는 외투가 아버지에게 그런 물건이 이었는데요. 주인공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외투와 거의 뒹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인공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닳고 헐어 벌인 이 외투 가 아버지 유전자를 지닌 것처럼 여겨지고 있기도 하죠. 작중에서 주인공은 무뚝뚝하고 속내를 에둘러 드러내는 인물로 등장하는데요. 그래서 그가 아버지의 외투를 입는 장면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인정할 수는 없지만 좋아했고 좋아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삶과 생각을 알고 싶어서 그는 아버지의 지난날 이 고스란히 담긴 외투를 입습니다.
작가 성석제 (1960.7.5. ~경상북도 상주)
: 데뷔-1986. 문학사상 시 부문 “유리 닦는 사람”
수상-1997.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 단편소설 <유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