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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 김경욱

2020-11-10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K는 통유리를 가리고 있던 블라인드를 득의만만하게 걷었다.

블라인드가 걷히자 오밀조밀한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끼로 만든거야.  토피어라고 해. 러닝머신과 패키지로 대여한 거야.

러닝머신을 한 시간 뛰어야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게 되어 있어.

흠뻑 땀 흘리고 나서 저 녀석들이 촉촉이 젖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없이 너그러워져. 그런데 애당초 내가 대여한 것은 저것들이 아니었어” 

나는 K가 말을 잇기만 잠자코 기다렸다.

“내가 대여한 것은 너그러움이었어”

장난삼아 대여를 신청해봤더니 며칠 후 러닝머신이 택배로 날아왔고,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사내들이 와서 

뚝딱뚝딱 저걸 설치하고 갔어. 상상력이 뭔지 아는 친구들이야.“



‘무엇이든 빌려주는 사이트’에서 ‘너그로움’을 대여한 K.

결국 주인공도 무엇이든 빌려준다는 사이트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검색창에 고독을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자

<군중 속의 고독>에서부터 <절대고독>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고독의 목록이 눈앞에 망라되었다.

나는 <휴식같은 고독>을 선택했다.

나는 일회 대여료 이만 오천원에 월 4회분을 신청했다.

매주 일요일을 대여날짜로 지정했다.



# 인터뷰.  무엇이든 빌려준다는 사이트 (전소영)

이 무엇이든 빌려준다 는 사이트가 굉장히 매우 매혹적으로 느껴지는데요. 물건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일정한 비용만 내고 빌릴 수 있다면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요? 하지만 기적은 현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기적 이기도 하죠. 빌린 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으니까 K 도 언젠가는 너그러움을 반납해야 할 것입니다. 끝이 예정된 행운. 그 마지막에는 어쩐지 불행한 결말이 웅크리고 만 있을 것 같죠?




작가 김경욱(1971. 광주광역시 )

:  데뷔- 1993. 작가세계 신인상

수상- 2016. 제40회 이상문학상 대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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