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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내용 중 일부
9.28 수복 전야.
진영의 남편은 폭사했다.
남편은 죽기 전에 경인도로에서 본 인민군의 임종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나이 어린 소년이었더라는 것이다.
소년병은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애걸을 하면서도
꿈결처럼 어머니를 부르더라는 것이다.
남편은 마치 자신의 죽음의 예고처럼
그런 이야기를 한 수시간 후에 폭사하고 만 것이다.
# 인터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방민호교수
진영이라는 인물은 우리 한국전쟁 이후 전형적인 어떤 상징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이 진영이란 인물 뒤에는 실존 인물로서의 작가 박경리가 버티고 있는거죠. 남편이 6.25 전쟁 중에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가 일종의 사상범으로 죽음을 당했고 아들마저 죽어버렸죠. 그래서 그 삶을 헤쳐나갔던 과정, 극한의 고통, 자기 자신도 병에 걸리고 극도의 가난 속에서 견뎌 나가야되는 그런 자기 자신의 삶의 모습이 여기 진영의 모습으로 응축됐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무정한 세상에 대한 작가 자신의 몸서리치는 경험이 진영의 형상속에 들어 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옆에는 중년남자 한 사람이
십자가, 성경책 같은 것을
노점처럼 벌여놓고 팔고 있었다.
진영은 어느 유역의 이방인인 양 그런 광경을 넘겨다보았다.
분위기에 싸이지 않는 마음 속에는 쌀쌀한 바람이 일고 있었다.
미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진영은 긴 작대기에 헌금주머니를 매단 잠자리채 같은 것이
가슴 앞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아주머니가 성급하게 돈을 몇 닢 던졌을 때
잠자리채 같은 헌금주머니는 슬그머니 뒷줄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진영은 구경꾼 앞으로 돌아가는 풍각쟁이의 낡은 모자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계기로 하여 진영은 밖으로 나와버렸다.
작가 박경리 (1926.10.28. 경상남도 통영 ~2008.5.5. )
- 등단 : 1955. 단편소설 [계산]
- 수상 : 2008. 금관문화훈장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