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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쑥 이야기 - 최일남

2022-04-12

ⓒ Getty Images Bank

쑥을 캐다 말고 인순이는 산을 바라보았다.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좋다. 참 좋다.


몸이 괜히 우쭐거리고 가슴이 다 울먹인다.

홑적삼 하나만을 걸친 등허리 위로 

따뜻하게 쪼속쪼속 스며드는 햇볕이 

어쩐지 근질근질하기도 해서,

무엇을 오도득 씹든가 

힘껏 쥐어뜯어 보고 싶은 충동이 치미는 것이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봄철 한 달 동안을 두고 밥꼴을 못 보고

아침 저녁을 거의 쑥죽으로만 살아온 인순이에게는 

어머니가 낳을 애기는 어쩌면 쑥빛을 닮아 퍼럴 것이리란 생각에

남몰래 혼자 속으로 두려워해 오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어머니나 자기의 살빛도 차차 퍼런 색깔로 

변해 가는 듯만 했다.


뒤볼 때 보면, 

대변은 말할 것도 없고 오줌도 다소는 퍼렇게 보인다.

자기 몸뚱어리의 어느 곳이든 쥐어짠다면

창병 걸린 닭 똥물 비슷한 거무튀튀한 쑥물이

금방 비어져 나올 것 같았다.



# 인터뷰. 방민호 문학평론가

쑥이 참 독특한 향을 갖고 있고 빛깔도 좋잖아요. 그러니까 맛을 내고 향을 내기 위해서 쑥을 뜯어다가 떡 이런 데 넣어요. 그런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쑥은 그런 어떤 독특함, 향기, 맛 이런 것의 인상이 아니라 아주 지독한 가난, 굶주림을 상징하는 합니다. 작가 최일남은 1932년생이에요. 이 작가가 일제 말기에 성장기를 보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제 말기에 혹심했던 가난의 기억, 전쟁 동원기의 한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기아의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요. 또 작중의 배경이 노무자로 끌려갔다는 것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6.25 전쟁 전후의 일이라고도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것은 시대를 관통하면서 흐르는 기아의 경험에 관한 보고서 같은 작품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죠.



단번에 양쪽 어금니에서 단침이 흘러나와 쌀알을 감춘다.

또 한 번, 또 한 번, 

이번엔 조금 많이 털어 넣었다.

고소한 뜨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인순이는 자꾸만 씹었다.


그러다가 이것을 집으로 가져가서 어미니와 밥을 지어 먹으려니 작정하고는,

아무 거리낌 없이 소쿠리를 쌀둥지에다 대어 

쑥을 한옆으로 제치고 쌀을 쓱 밀어 넣고 있었는데 

턱, 하는 소리와 함께 인순이는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앞으로 거꾸러졌다.

뒤미처 우악스런 손이 인순이의 머리를 낚아채었다.


“꽤씸한 년, 조막만한 것이 벌써부터 남의 물건을 훔쳐?” 


인순이는 그제야 쌀이 남의 것이었고

자기는 그것을 도둑질하다가 들켰다는 사실을 깨닫자,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며 어쩔줄을 몰랐다.




작가 최일남 (1932.12.29. 전라북도 전주~ ) 

    - 등단 : 19856년 소설 [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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