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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서 굶어죽는다는데
온 가족이 배고픈 고생을 안 하는 건 아내 덕분입니다.
아내는 수완 좋고, 돈줄도 잘 알아봐서 장사엔 도가 텄습니다.
“갱장 아주바인 좋겠수. 돈 잘 버는 에미네 만나서...
용치 뭐, 맨날 숙독에 빠져 사는 낭군도 낭군이지비”
“지금 뭐라 했고? 낭군이 뭐 어쨌소?”
“양? 에구, 나는 낭군이 없어 좋단 말이지비.
원래 에미네는 세월 따라 함지 팔아야 돈 벌재오.”
- 방송 내용 중 일부
설핏하던 해가 서산을 넘자
부챗살 같은 핏빛 노을이 산마루를 물들였다.
까마귀 한 놈이 빗살을 안고 너울너울 날아옌다.
시커먼 놈이지만 노을빛에 물들어 제법 봉황 같다.
“선일아, 저거 봐라. 수탉이 저렇게 높이 날 수 있냐?”
하늘을 보던 형무가 친구와 땅따먹기 놀음을 하는 아들에게 묻는다.
“아부지, 돌았잼까? 그게 어째 수탉임까? 까마귀지.”
# 인터뷰. 방민호 문학평론가
갱장이라고 하는 국영탄광의 월급장이자 당원이기도한 사람이 도저히 사회주의 경제 또는 당에 의지해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자기 아내처럼 자기도 돈 벌러 나서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는 게 이 소설의 주제라고 볼 수 있고요. 소설 앞뒤에 까마귀를 내가 왜 수탉으로 봤지 이런 대목이 나오잖아요. 그것은 지금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 상황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형무 자신의 상황을 빗대서 얘기한 것이죠.
그 며칠간 구류장 여독을 풀며 생각을 거듭하던 형무는
저녁 때 민수를 찾아갔다.
밤차로 혜산장에 갖고 갈 생선을 얼음과 함께 포장하던 민수가 깜짝 놀란다.
“민수야, 내 전번 날은 진짜 미안했다.
내가 비린내 그만 풍기라며 혜산 갈 때 널 비웃었잖니”
민수는 괜찮수, 거 배낭 아가리 좀 벌려 주겠소, 했고,
둘은 함께 비닐에 포장한 생선을 배낭 안에 넣었다.
“민수야, 나두 이젠 생선장사 해 볼란다.
구멍, 요령, 판, 다 알려줄 거지?”
둘이면 이윤을 곱절을 떨구겠다고 좋아하던 민수가
탄광서 한다 하는 간부님이 푹 젖은 고기배낭 메고 다닐 수 있겠소, 하며 놀린다.
저녁 해가 지며 서산마루가 붉게 물들었다.
시커먼 새가 또 너울너울 난다.
얼핏 봐도 까마귀다.
세월이 하도 퀴퀴하니 까마귀 세상이 됐나, 하고 중얼거리던 형무가 똑 걸음을 멈춘다.
작가 이지명 (1953. 함경북도 청진 ~ )
- 등단 : 2008년 장편 동화 [삶은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