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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두막집 안주인 - 김정애

#라디오 책방 l 2022-06-14

라디오 책방

ⓒ Getty Images Bank

배급이 끊기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식량 부족으로 직장에 출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8.3이라는 걸 바쳐야 했다.

8.3은 재활용 생산 방침으로,

달마다 당이 제시한 과제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직장이나 당 조직에 바치는 것인데,

말하자면 직장마다 떨어진 사회적 과제다.

정 만들어 낼 물건이 없으면 그에 맞먹는 액수의 현금이라도 무조건 바쳐야 한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할머니가 다가들며 경심이의 천 가방을 열었다.

반짝이는 알루미늄 양재기가 결혼하면서 갖고 온 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은심 할머니가 와뜰 놀라며 경심을 주시한다.


그 눈이 무엇을 묻고 있는가를 아는 경심은

할 수 없이 그릇을 팔러 떠나게 된 사연을 터놓았다.

풀죽만 먹다가 물로 이틀을 견뎠다는 말까지는 꺼내지 못하고

그냥 설움에 치밀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린 순철이네가 식량 때문에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줄은 몰랐소.

에구, 말을 해야지. 지금이 어떤 세월인데....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소릴 못 들었소? 

그러지 말고 우리 집 강냉이를 먼저 갖다 먹소. 

우리 집에 먹을 게 떨어지기 전에 갚아 주면 되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가족에게 아주 극심한 기아가 닥쳐왔지만 식구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인물은 경심뿐이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인이었지만 무능했고 당비서라는 사람은 농민의 고통을 헤아리기는커녕 농민들의 씨감자까지도 빼앗아서 술로 바꿔 먹죠. 북한에서는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가 강한데, 특히 경제난이 심해진 이후로는 여성들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 까지도 이렇게 홀로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작중에 경심은 바로 그런 여성의 고난과 의지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다만 결말부에 보면 은심 할머니가 식량을 좀 이렇게 나눠주기도 하죠. 여성의 연대와 공동체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거기서는 느껴집니다.


경심은 의식이 흐려지고 몸이 땅 밑으로 잦아드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이게 죽음이라는 것도 안다. 어젯밤 분명 겪었으니까.

그러나 엊저녁과는 상대적으로 다른 만족감이 차분히 가슴에 내려앉는 것을 경심은 느꼈다. 어젯밤엔 슬펐지만 지금은 행복했다. 이렇게 가도 식구들은 사니까, 아니 살렸으니까.


엄마가 돼 애들을 굶주림에서 꺼내 주고 죽음에서 살렸다는 만족감이 가슴 그득히 차오른다. 이건 느낌이 아닌 분명한 현실이다.


식구들은 엄마가 그리고 아내가 지금 운명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눈 앞엔 널린 강냉이가 아닌 살 수 있는 생명만 보였다.

경심이는 그 모습을 끝까지 보려 눈을 뜬 채로 움직임을 멈춘다.

오르내리던 가슴도 잠잠해진다.

여윈 얼굴에 그 때까지 지우지 않은 미소가 백합처럼 피어 있었다.




작가 김정애 (1968. 함경북도 청진 ~ ) 

- 등단 : 2014년 단편소설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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