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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나의 일기 - 장은진

#라디오 책방 l 2022-09-13

라디오 책방

ⓒ Getty Images Bank

안나는 우리 동네 조그마한 성당의 종지기였다.


이 얘기를 듣고 누군가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추한 모습 때문에 노틀담 성당 종탑에 갇혀 살아야 했던 불쌍한 영혼 콰지모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안나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처럼 콰지모도보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집시 여자, 에스메랄다에 가까운 인물이다.

냉소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안나는 빨간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방랑자처럼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열한 살 꼬마 아가씨였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안나에게는 일기장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한 많은 그 긴 글을 모조리 일기장에 남긴다면

어떤 날은 하루치 일기를 쓰기 위해 일기장 절반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


일기장 살 돈은 없는데, 뭔가를 적어야 한다는 강박감은 날로 심해지자

안나가 종이 일기장 대신 선택한 것은 바로 우리 동네였다.


우리 동네는 비록 낡고 볼품없지만

안나에게는 세계 지도 만큼 커다란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었다.

그 가능성은 연립주택 벽에, 공원 플라스틱 벤치에,

놀이터 철봉 기둥에, 전신주에, 공공 쓰레기통에,

철이나 유리로 된 문 등등에 담겨 있었다.


울퉁불퉁하지 않고 반반하고 매끄러운 데라면 어디라도 충분했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이 작품의 제목이 ‘안나의 일기’인데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안네는 유대인이었고 10대의 나이에 독일의 탄압을 피해서 숨어 살면서 자신의 삶을 일기로 남겼죠. 그 안네의 일기를 보면 안네가 겪었던 아주 사소하고 다양한 경험들이 적혀 있습니다. 가령 어른들 험담, 생리이야기, 첫 키스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안네에게 있어 일기라는 것은 비밀에 기록장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여기 살아 살아 있었음을 세상에 남기는 그런 기록물이었습니다. 자기와 가족이 언제든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기만이 유일하게 삶을 증명하는 기록이 되었던 것이죠. 안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고립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또 남기는 기록으로 일기를 활용했던 것이죠. 만약에 일기가 없었다면 안나는 세상과 전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았을 것 같아요. 다시 말해 안나의 일기는 안나와 타인들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주는 기록이었던 것이죠. 



물론 확실히 달라진 게 있긴 했다.

그건 안나가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안나에게 일기를 쓸 기력이나 흥미가 없어진 것인지,

주변을 자유롭게 관찰할 수 없어서 

쓸 수 없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섭섭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저 종안의 일기만은 읽지 않기로 다짐했다.

안나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우리였지만

그것만큼은 지켜 주는 게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해서였다.


실은 너무 높은 곳이라 읽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 안나의 비밀은 신만이 알 것이고,

다른 일기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풍화가 그 모든 것을 말끔하게 지워 버릴 것이다.

안나가 우리의 기억에서 언젠가는 사라질 것처럼.


아쉽지만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안나 이야기의 전부이고,

그 후 성당의 종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작가 장은진 (광주광역시, 1976~ )

    - 등단 :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 [키친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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