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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상 최대의 쇼 - 김희선

2022-09-20

ⓒ Getty Images Bank

방공호의 두꺼운 철문을 나서자 

새하얀 빛 속에 아름다운 색색의 꽃잎들이 무수히 흩날리고 있었다.

문득 눈을 들자 도시의 상공엔 엄청나게 거대한 비행접시가 떠 있었고,

꽃잎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색종이 조각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W시는 대한민국 육군의 야전군 사령부와 1군단 지원 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외계의 비행접시가 W시를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들의 평화적 제스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비행접시가 왜 하필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강원 내륙의 소도시, W시에 

출현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몇 년 전부터 그 아마추어 사학자는 오래 전 비행접시를 목격했던

각계각층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작업은 불필요하고도 무의미한 일일지도 몰랐다.

최근 들어 점점 많은 학자들이 당시 일어났던 W시의 비행접시 사건이

그저 하나의 허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를

속속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이 작품은 우리에게 삶과 역사에 관한 하나의 의문을 남깁니다. 기록된 역사가 과연 사실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라는 그런 의문인데요. w시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은 그 주민들에게는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그걸 더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작중에는 주민들 개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목격담을 들려주는 부분이 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그 사건이 주민 전체가 집단 최면에 빠져들었던 일이라고 역사에 기록이 됩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 허구가 되어버린 것인데요. 이러한 결말은 역사를 포함해서 사실을 말한다고 자부하는 기록물들일지라도 거기 담긴 것이 완전한 진실은 아닐 수 있다라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범람할 수도 있고 또 그 사건을 자신의 편의에 맞춰 기록하거나 해석하는 사람들도 등장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좀 더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 학계에선, 주민 전체가 집단 최면 상태에 빠져들었던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역사적 사건의 증례 목록에

W라는 도시의 이름을 추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명의 사학자가 남긴 기록물 속에서

그 모든 일은 여전히 실재했던 사건이자 생생한 진실처럼 보인다.


어쨌든 그는 인터뷰 자료들에 대한 대충의 정리를 끝내고

맨 마지막 장에 아래와 같은 코멘트를 적은 다음 파일을 덮었다.


‘만약 그 때 W시 상공에 나타난 비행접시가 공격을 감행했다면,

그래서 우주전쟁 비슷한 사태라도 벌어졌다면,

사건은 다른 식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행접시는 조용히 사라졌고,

그저 평온한 일상이 한 없이 계속됐을 뿐이다.

모든 평범함이 그렇듯 과거는 잊혀갔고,

사람들이 겪은 일들은 허구가 되었다.

상황은 종료됐으며,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 김희선 (강원도 춘천시, 1972~ )

    - 등단 : 2011년 단편소설 [교육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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