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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공터 - 박화영

2022-11-08

ⓒ Getty Images Bank

이 고원지대 한 가운데에 바로 문제의 공터가 있었다.

처음 인근 주택 대여섯 채가 헐리고 공터가 생겨났을 무렵,

사람들은 으레 그렇듯이 금세 그 자리에 

연립주택이나 원룸 같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났건만 공터는 여전히 버려진 채였다.

사람들은 조금씩 공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공터에서 빈 술병이나 본드 같은 것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공터를 모든 범죄의 근원지이자 종착지처럼 여겼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 말대로 

이 도시에 공터를 내버려두는 짓은 불길한 징조를 넘어 죄악이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사람들은 단지 버리기 위해서만 공터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를 태우거나, 파묻거나, 뿌리기 위해서도 공터를 찾았다.

눈 밑에 짙은 기미가 낀 여자는 자주 뭔가를 태우러 공터에 왔다.

여자는 드럼통에 편지며, 엽서, 혹은 곰 인형 따위를 집어넣고 불을 붙이곤 했다.

인근 연립주택 반지하방에서 사는 남자는 

새벽녘이면 뭔가를 파묻으러 자주 공터를 찾았다.

늘 사람 키만 한 것을 검은 비닐로 감싸 안고 삽을 든 채였다. 



# 인터뷰. 방민호

공터는 사람들의 삶의 찌꺼기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어요. 삶의 찌꺼기는 그들의 피로하고 힘들고 메마른 삶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공터 위에 바로 단단한 콘크리트 칠이 행해지는 거죠. 그러면 모든 것들은 잊혀 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은폐된 폐허 위를 이제는 아주 단단한 도로가 되고 아파트가 되고 상가가 된 곳에서 재미있게 살아갈 수도 있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도시는 그로테스크한 것을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부 우울한 것 그리고 피로한 것 이런 것들을 갖고 살아가지만. 상가라든지 아파트라든지 아스팔트도로는 그 모든 것을 감추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거죠. 강변하는 것이죠.



그 무렵 공터에 시공 계획을 알리는 푯말이 들어섰다.

동네사람들은 연이어 골칫거리들이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곧 공사 차단막이 설치되고 고양이들이 쫓겨났다.

밤마다 음산한 바람 소리와 고양이의 울부짖음이 들리던 공터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고양이들은 동네 여기저기로 흩어졌지만 

한두 마리씩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누군가 독극물을 풀어 고앙이 들을 죽이고 있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었다.


고양이가 동네에서 모두 자취를 감춘 이튿날,

공터 인근의 다세대주택 옥상에서 한 여자가 뛰어내렸다.

여자가 벗어놓은 굽 높은 하이힐과 유서가 옥상에서 발견되었다.

유서에는 드디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여전히 고양이 눈이 보인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공터는 평평하게 다듬어지고 그 위로 두꺼운 시멘트가 발렸다.




작가 박화영  (전라남도 광주, 1977년 출생~ )

    - 등단 : 2009년 신춘문예 단편소설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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