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tty Images Bank
비단 철물점 아줌마와 최씨 아저씨의 관계뿐만이 아니었다.
규리는 날마다 모르는 게 나을 성 싶은 불편한 이야기들을 들어야 했다.
슈퍼 할아버지가 옥상에서 비둘기를 잡아 구워 개에게 먹인다든가
윗길 세탁소 아저씨가 아랫길 세탁소 담벼락에 방뇨를 했다든가 하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무수히 흘러나왔다.
타인의 사정을 본의 아니게 알게 되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규리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하게 대해도
도를 넘어 친밀하지는 않은 원장과 밥 먹는 게 점점 좋아졌다.
원장과 직원,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가,
가로대를 사이에 두고 담긴 짬짜면처럼 한 그릇에 무리 없이 담겼다.
어른이 된 후에는 유치했다고 회상한 바 있는 짓궂은 장난질이
원장과 밥을 먹는 식탁에서 되살아나기도 했다.
해물전의 바삭한 부분을 선점하기 위해, 접시 위에서 젓가락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원장은 유행도 맥락도 없는 허무개그로 곧잘 했다.
“사람들이 왜 우리 다복한의원에 오는지 아니?”
“복 많이 받으려고?”
“틀렸어. 아파서 오지. 안 아프면 한의원에 왜 오겠냐~”
# 인터뷰. 방민호
규리로서는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어른들의 세계, 어린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그 이면의 모습을 보게 되는 불편함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 불편함까지도 다 알아나가게 됨으로써 비로소 더 깊게 알고 이해해나가는 주인공의 의식의 변모 과정을 그려놓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작가의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알고 보니 동네 사람들이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든 다 아픈 사람들의 세계고, 자기 친구들도 다 아픈 사람들이죠. 이런 모든 아픈 이들의 세계를 잘 갈무리해서 하나의 그 이야기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의 아주 뛰어난 점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서른 넷이라니 믿기지 않아요.
마흔 넷이 되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요?”
‘꼬락서니’가 좀 나아질까요, 라고 하고 싶었으나 나름 순화시킨 질문이었다.
“글쎄, 네가 쉰 넷, 내가 쉰 일곱이 되면 알 수 있으려나?”
규리는 그런 건, 자신이 예순 넷, 한용수가 예순 일곱이 되어도
알지 못하리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우리 성당 한 번 가볼래요?”
“뭐? 왜?”
“서른 셋에 다 이룬 예수님이 다소 무료하실지도 모르니까”
원장이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규리는 까까머리 시절의 한용수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걸 기타로 치려다
계속 음이 틀리자 고개를 갸웃거렸던 걸 떠올렸다.
멀고도 가까운 추억이었다.
원장과 규리는 맛있게 먹은 족발이
피부든 어디든 분명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데 동의하며 식사를 마쳤다.
만연해 있지만 진하지 않은, 얇디얇은 맛을 내는 저녁 한 끼였다.
작가 심아진 (경상남도 창원, 1972년 ~)
- 등단 : 1999년 중편소설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