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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후처기-임옥인

2022-12-27

ⓒ Getty Images Bank

S읍에 내려야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곤 별로 없을 게다.

결혼식에는 참석 안 하셨던 시부모와 시동생들이 있을 게고,

그리고 그 애들이 있을 것이다.

영수는 아홉 살, 복희는 일곱 살 이래지.

어떤 애들일까?

저희 아버지를 닮아서 저렇게 무뚝뚝할까?

소문으로만 들은 저희 어머니를 닮아 상냥할까?

나를 보고 엄마라고 할까.

나는 그 애들을 만나는 순간 무엇을 느낄 것인가.

 

- 방송 내용 중 일부 



나와 결혼한 이후론 가끔 자리를 가지고 병원 진찰실 옆방에서 자는데,

친한 동무와 얘기하는 걸 들으면

그런 밤이면 못 견디게 복희 엄마의 생각이 나는 때라 한다.


모든 조건이 나보다 남편의 마음을 끌게 생겼던 그 여자.

그 우직스레 생긴 남편의 순박한 마음을 독점하고 

죽어도 그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채 있는 그 여자...

그 환영은 곧 복희에게 있을 것이다.

그 애에게 그 애 어머니를 느끼고 남편은 그것으로 낙을 삼을 것이다.   


덕순은 쓸데없는 얘기를 했다는 듯이

그리고 내게 충심으로 미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표정 없이 시무룩해 앉아 있었다.


사람을 부리기만 하고 손끝 하나 까딱 않고 

놀고먹은 복희모는 남편의 마음을 독점했다.

나는 이 집의 하녀 노릇 밖에 더 한 것이 무언가?

그에게서 따뜻한 음성과 시선과 애정을 느껴본 일이 있는가?


아니다. 한 번도.



# 인터뷰. 방민호

이 소설의 묘미는 여성 심리를 아주 그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에요. 이 소설은 후처로 시집가는 신여성의 아이러니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도 할 수 있어요. 자기는 세련되고 새로운 여성이지만 동시에 안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안정되게 갖고자 하는 일종의 욕망 또는 욕심을 갖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사랑을 베푸는가 하면, 그 전처에 대해서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 그 전처의 어머니에게는 반감 같은 것을 갖고 있고 시부모에게는 신여성이기 때문에 할 말은 하고 지킬 것은 지킨다는 식의 태도를 갖고 있는데요. 아주 복잡하고 모순적인 세계를 하나의 단편 속에 잘 그려낼 수 있었는지 그 솜씨가 놀라운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속에 움직이는 내 유일한 ‘고것’은

나서, 커서 저 애들보다는 몇 배나 더 잘할 것만 같았다.


덕순이를 절교해버린 내 주위에는

집 식구 이외엔 강아지 새끼 하나 어른거리는 것이 없었다.

이런 외부의 사교에서 멀리멀리 떠나도 털끝만치도 고독과 허전함을 느끼지 않는다.

내 속에 커가는 한 생명이 내 유일한 벗이요,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나는 ‘내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질 듯이 기쁘다.


내 주위는 점점 제한되어가나 그러나 내 마음은 무한정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내 세계에서 내 뱃속에 커가는 아이의 태동을 빙그레 웃으며 느끼는 것이다.




작가 임옥인(함경북도 길주, 1915. 6. 1.~1995. 4. 4)

    - 등단 : 1939년 단편소설 [봉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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