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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첩첩-구경미

2023-01-03

ⓒ Getty Images Bank

“눈이 보고 싶다” 


아버지는 유언이 아니라 소원을 말했다.

유언을 남기는 줄 알고 잔뜩 긴장했던 우리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눈이 보고 싶다” 


아버지가 한 번 더 말했다.


“눈 오려면 아직 멀었어요” 


“아직 먼 게 아니라 안 올 확률이 높지.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데잖아, 여기” 


우리는 아버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한꺼번에 긴 문장을 말하지 못했다.


“누가 날 데려갈 거냐?” 


이로써 분명해졌다.

아버지는 유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우리를 불러 모았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구름이 짙어졌다.

오늘이라면 눈이 올 것도 같았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눈을 기다렸다.

처음엔 아버지 때문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유가 모호해졌다.


“아버지가 지은 건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게 뭐예요?” 


“우리 집”


“지금 우리 사는 집 말고 네 아버지가 부모님께 지어드린 집 있다”


“우리집은 왜 아버지가 안 지었어요?”


“남의 집 짓느라 바빴지 뭐. 집에선 못질 한번 안 했다 네 아버지, 내가 다 했지”


엄마의 고자질이 계속됐다.


“우리 집 하수구 막히면 이제 엄마 불러야겠네”


셋 째 언니의 농담에 모두들 미소를 지었다.



# 인터뷰. 전소영

작품 제목이 첩첩인데 여러 겹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눈이라는 소재와 그것을 연결시켜 보면 눈이 작중에서는 가족관계를 상징하고 있는데요. 이 가족은 각자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가족관계라는 것도 어느새 눈송이처럼 차갑고 금세 사라질 수 있는 약한 것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가족들은 서로가 질긴 끈으로 엮여있는 관계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송이들이 첩첩 쌓여서 포근하고 단단하고 또 아름다운 설원이 펼쳐지게 되죠.



차창 밖으로 설악산이 보일 무렵부터 기적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싸락눈이나 진눈깨비가 아니라 십 원짜리 동전만한 눈송이였다.


“이제 소원 푸셨어요?” 


“쓰러지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 번도 가족들과 여행을 간 적이 없더라.

 그게 가장 후회됐다” 


우리는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도로는 점점 눈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낙엽 다 떨어낸 나무도 눈사람으로 변해갔다.

우리가 탄 차도 금방 커다란 눈송이로 변했다.

사방이 온 통 눈이었다.

내려 쌓인 눈 위로 다시 눈이 내리고 또 눈이 내렸다.




작가 구경미(경상남도 의령, 1972~)

    - 등단 :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동백여관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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