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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리알-계용묵

2023-01-10

ⓒ Getty Images Bank

며칠 전,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50환씩 성금을 모으자는 야학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을 때

만금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작년 여름, 물난리로 아버지와 누이, 집까지 다 잃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남은 자신보다

그 아이들의 처지가 더 딱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만금은 한 달에 백 환씩 하는 학교 수업료가 두 달이나 밀렸지만

전쟁 고아들을 위해 꼭 50환을 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만금이의 얘기를 듣고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쓸어보니 오리알은 한 알이 아니요, 세 알이나 대글거렸다.

만금은 그것을 학교 앞 거리 상점에 가져다 팔았으면

50환은 넉넉히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죄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것은 죄다’ 


만금은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으나

뒤미처 그의 눈앞에는 헐벗고 굶주려 우는 전쟁 고아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살려 달라는 듯이 자기의 어깨에도 그들이 무수히 달려와서

매어달리는 것 같은 환상이 눈앞에 어릴 때,

그의 손은 어느 새 벌써 오리알에 가 닿아서 떨리고 있었다. 



# 인터뷰. 전소영

윤초시의 집에 갔다가 오리 알을 줍고, 그것을 팔아서 성금을 내기까지 내면에서는 많은 고민과 갈등이 생겨났는데요.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결국 오리알 판돈을 전부 다 성금으로 내버려요.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는 남을 돕는 일조차도 녹록치 않았던 시대의 비정함이 인물의 갈등과 또 행동 방식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작가는 결말을 통해서 당대가 굉장히 모순적인 시대였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만금이는 어른들의 계략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했고 그것을 가지고 타인을 돕고자 했어요. 이타적인 사람이 오히려 벌을 받는 당대 사회의 문제가 만금이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선생은 돈 60환을 테이블 서랍에서 꺼내어

책상 위에 다 휙 밀어던졌다.


“다시 그런 못된 짓을 어디 또 해 봐라.

 이 자리로 당장 그 오리알을 물러다가 윤초시댁에 가져다 드려” 


선생의 손 끝에서 힘있게 밀리는 돈이 

눈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

만금은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들먹이는 어깨 따라 가다듬었던 눈물이 또 다시 주르르 흘러내리며

지전 위에 뚝뚝 떨어졌다.


“냉큼 집어 들고 나가지 못해!” 


만금은 말없이 떨리는 손으로 돈을 움켜 들었다.


어제 저녁 상점에서 오리알과 바꿔 들었을 때의 

그 돈과의 감정의 교차를 손 안에 느낄 때 

만금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걸음 좇아 

마룻바닥 위에 점점이 떨어지는 말간 눈물방울을

만금은 밟고도 또 떨어뜨리고 

떨어뜨리고는 또 밟으며 무거운 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작가 계용묵 (평안북도 선천, 1904. 9.8.~1961. 8. 9.)

    - 등단 : 1925년 단편소설 [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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