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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만세전’ 제1편-염상섭

2023-02-28

ⓒ Getty Images Bank

싫든 좋은 하여간 근 6, 7년간이나 소위 부부란 이름을 띠고 지내 왔는데...

당장 숨을 몬다는 지급 전보를 받고 나서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무사태평인 것은, 

마음이 악독해 그러하단 말인가.

지금 이다지 시급히 떠나려는 것은 무슨 때문인가.

의리로나 인사치례로?

그렇지 않으면 일가에게 대한 체면에 그럴 수 없다거나,

남편 된 책임상 피할 수 없어서 나가 봐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마음에도 없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어디 있는가? 


- 방송 내용 중 일부 



사실 말이지, 나는 그 소위 우국지사는 아니나

자기가 망국 백성이라는 것은 어느 때나 잊지 않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망국 백성이 된 지 벌써 금 십 년 동안 

인제는 무관심하도록 주위가 관대하게 내버려 두었다.

도리어 소학교 시대에는 일본 교사와 충돌을 하여

퇴학을 하고 조선 역사를 가르치는 사립학교로 전학을 한다는 둥,

솔직한 어린 마음에 애국심이 비교적 열렬하였지마는

차차 지각이 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간혹 심사 틀리는 일을 당하거나 

일 년에 한 번씩 귀국하는 길에 시모노세키에서나 부산, 경성에서 조사를 당하고

성이 가시게 할 때에는 귀찮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지마는 그 때 뿐이요,

그리 적개심이나 반항심을 일으킬 기회가 적었었다.     



# 인터뷰. 전소영

이 작품의 시간적인 배경은 1918년입니다. 이러한 시간 설정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듬해인 1919년에 한국 근대사에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만한 3.1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작품의 제목인 <만세전>은 3.1 운동, 즉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요. 다시 말해 만세전에는 조선에서 왜 만세운동이 일어났는가 답변이 담겨 있죠. 게다가 이 작품은 원래 <묘지>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되다가 일제의 검열에 걸려서 여러 차례 삭제가 되기도 했어요. 그런 만큼 일제 강점기 조선의 묘지와 같았던 어두운 현실을 아주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에서 나왔는데 잠깐 파출소로 가십시다.” 


“내가 도적질이나 한 혐의가 있단 말이오?

 정 그럴 테면 이리로 들어와서 조사를 하라고 하구려..” 


대체 나 같은 위인은 경찰서의 신세를 지기에는 너무도 평범하지만,

그래도 이 배만 놓치면 참 정말 유치장에서 욕을 볼 것은 뻔한 일,

하늘이 두 쪽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배를 놓쳐서는 큰일이라고 결심을 단단히 하고서도 

웬일인지 가슴은 여전히 두근두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서 올라오라는 선원의 꾸지람을 들어가며 겨우 갑판 위에 올라서자

기를 쓰는 듯한 경적과 말 울음 소리 같은 기적 소리가 나며

신경이 자릿자릿한 징 소리가 암흑에 싸인 부두 전체에 요란하게 울렸다.  




작가 염상섭 (서울특별시, 1897.8.30.~1963.3.14.)

    - 등단 : 1921년 단편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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