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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만세전’ 제2편-염상섭

2023-03-07

ⓒ Getty Images Bank

비릿하기도 하고 고릿하기도 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샛골짜기를 빠져서 들어가니까

바닷가로 빠지는 좁다란 골목이 나타났다.

함부로 세운 허술한 일본식 이층집이 조선 사람의 집 같지는 않으나

이 문 저 문에서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조선 사람이다.

잠깐 보기에도 이런 항구에 흔히 있는 그러한 너저분한 영업을 하는 데인 것이 분명하다.


다시 큰길로 빠져나와서 상밥 파는 데라도 있으려니 하고

이 골목 저 골목 닥치는 대로 들어가 보았다.

무엇보다 김치가 먹고 싶고 숟가락질이 하여 보고 싶어서 찾아다닌 것이다.


그러나 조선 사람집 같은 것은 그림자도 보이지를 않는다.

우스운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 좁다란 시가지마는 

큰길이고 좁은 길이고 거리에 다니는 사람의 반수 이상이 조선 사람인 것이다.


“대체 이 사람들이 밤이 되면 어디로 기어들어 가누?”하는 의문이 생기는 동시에

그 불쌍한 흰옷 입은 백성의 운명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천대를 받아도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다!

그도 그럴 것이다.

미친 체하고 어리광 비슷한 수작을 하거나 어떻게든 저편을 웃기기만하면

목전에 닥쳐오는 핍박은 면할 것이다.


공포, 경계, 가식, 굴복, 비굴...

이러한 모든 것에 숨어사는 것이 조선 사람의 가장 유리한 생활 방도요, 현명한 처세술이다.

실상 생각하면 우리의 이러한 생활 철학은 오늘에 터득한 것이 아니요,

오랫동안 봉건적 성장과 관료 전제 밑에서 더께가 앉고 굳어빠진 껍질이지마는

그 껍질 속으로 점점 더 파고들어 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 생활이다.



# 인터뷰. 전소영

조선 땅에서의 첫 방문지인 부산에 도착했을 때 주인공은 깊이 탄식을 합니다. 자신이 알던 조선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어졌고 거리나 건물이나 하다못해 식당조차도 전부 다 일식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부산의 사진을 보면 실제로 일본의 한 도시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럴 정도로 조선이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공동묘지다!

공동묘지 속에서 살면서 죽어서 공동묘지에 갈까 봐 

애가 말라 하는 갸륵한 백성들이다!

구더기가 득시글득시글 거리는 무덤속이다

모두가 구더기다. 너도 구더기, 나도 구더기다. 


그 속에서도 진화론적 모든 조건은 한 초 동안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겠지!

생존경쟁이 있고 자연도태가 있고,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하고 으르렁댈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구더기는 낱낱이 해체가 되어서 

원소가 되고, 흙이 되어서 내 입으로 들어가고 네 코로 들어갔다가,

네나 내가 거꾸러지면 미구에 또 구더기가 되어서 

원소가 되거나 흙이 될 것이다.

에엣! 뒈져라!  움도 싹도 없이 스러져 버려라!

망할 대로 망해 버려라!

사태가 나든지 망해 버리든지 양단간에 끝장이 나고 보면

그 중에서 혹은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나은 놈이 생길지도 모를 것이다.’




작가 염상섭 (서울특별시, 1897.8.30.~1963.3.14.)

    - 등단 : 1921년 단편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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