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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하늘은 왜 파란가 - 송하춘

2023-05-23

ⓒ Korea Tourism Organization

젊은 사랑의 빛깔은 핑크빛이라는데, 실버들의 사랑도 핑크 빛깔일까.

사랑도 늙는 걸까.

늙은 사랑은 어떻게 생겼을까.

황홀의 색깔은 주황이라고 들었다.

젋은 사랑의 빛깔이 핑크빛이라면 그의 사랑은 주황이고 싶다.

그렇다.  지금 그의 세상은 온통 주황이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왔다!

그는 터져 나오는 탄성을 목 안으로 삼키며 창밖을 보았다.

거기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후에 눈이 내릴 거라는 예보는 

벌써 몇 차례나 할아버지 마음을 흔들어 놓았는지 모른다.

동네 상가를 채 빠져나가지도 못했는데 하늘은 펑펑 함박눈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를 불러내기로 하였다.

언젠가는 꼭 차를 한 잔 같이하고 싶었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운현궁 담벼락을 끼고 낙원상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안국역 5번 출구로 나오면 쉬운데 4번 출구로 잘못 나왔음이 분명하다.

그는 달려 나가 이쪽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책 다실 ‘삼가연정’

의미를 알 듯 모를 듯 구태 나는 ‘삼가연정’이 알맞게 통속적이어서 끌렸다.

그녀와 차를 마신다면 이 집이 좋겠다고 그는 언제부턴가 별려왔었다.


눈발은 난삽하게 흩날렸고, 풍경속의 그녀는 그대로 할머니였다.



# 인터뷰. 전소영

주인공은 젊은 사랑의 빛깔은 핑크빛, 실버들의 사랑은 황혼에 새긴 주황이라고 말을 하는데요. 이 인상적인 구절과 마지막 장면을 겹쳐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핑크가 새벽에 여명을 떠올리게 한다면 주황은 일몰의 석양을 상기시키죠. 시작을 알리는 떠오르는 해도 참 생생하고 또 강력합니다. 하지만 지는 해는 끝을 바라보기 때문에 또 다른 강력함과 황홀함을 지니는 것 같아요. 노년의 사랑도 비유컨대 그렇지 않을까요. 삶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이 사랑이 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켜가는 사랑, 끝을 알아서 더 애틋하고 눈부신 주황, 그것이 노년의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수화기를 든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렇구나.

5일째였는데, 불과 5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5일이면 감쪽같이 떠날 수가 있구나.

내 안의 사랑을 일깨워준 여자, 꿈같았는데...


그는 허리를 일으켜 창밖을 보았다.

4번 출구를 빠져나와 운현궁 돌담길을 사람들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안경을 벗어 눈자위를 비볐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보지만 거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살아 숨 쉬는 것까지도 어제 그대로인데, 사라진 것은 그녀뿐이었다.

그럼, 지금쯤 어딘가를 가고 있을 거야.

눈발이 멎어 있었다.




작가 송하춘 (전라북도 김제, 1994년~)

    - 등단 : 1972년 단편소설 [한번 그렇게 보낸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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