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문화

거미의 집 - 이순원

2023-05-30

ⓒ Getty Images Bank

노인은 문에서 떨어져 방바닥을 짚었다.

너무 오래 살았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옛 노인들 말 한마디 그른 게 없었다.

노인은 자신이 자식들의 짐이 되어 왔음을 알았다

새끼들에게 파 먹힐 것 다 파 먹히고 나면 

거미도 줄에 스스로 목을 걸지 않던가.

노인은 안간힘 쓰듯 문 쪽으로 몸을 일으켰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어린 시절 그는 그런 거미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지은 변소 천장에서 한 가닥 줄을 타고 내려와

그곳에 다리를 꺾고 앉은 그의 눈앞에 일렁거리곤 했다.

아직 형체가 남아 있긴 했지만 

손에 쥐면 흔적도 없이 부서질 껍질뿐인 거미였다.  

그 때 어머니는 말했다.


“거미는 그래 살다 죽는다.

 니가 제대로 못 봐 그렇지 자세히 보면 그 거미 몸에 새끼들이 바글바글할 기다.

 새끼들이 제 어미 몸을 그래 껍질만 남도록 파먹고 살거든.

 거미는 젖이 없으니까” 


주름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게 앉아있는 모습 때문일까.

여전히 어머니의 얼굴에서 연상되는 것은 


서서히 말라 가는 한 마리 거미였다.

그는 조용히 거미의 방에서 나왔다.



# 인터뷰. 전소영

미디어를 통해서 고령화 사회에 문제를 주로 뉴스로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통계에 대한 언급이 대부분이죠. 물론 통계조사도 노년층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만 숫자나 수치가 인간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노인이 겪는 갈등과 고통 슬픔은 말해주지 않으니까요. 노년의 문제를 전면화하여 다루는 문학은 뉴스의 여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년층의 구체적인 현실과 감정을 알려주고 고령화 사회를 체감하게 하는 것이죠. 인간은 누구나 하루하루 늙어가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되겠죠.



노인은 자리를 걷고 일어나 안방 옷장에서

아들의 내복 중 두터운 것으로 한 벌 골라 꺼냈다.

그리고는 집을 나오다 아파트 입구의 공중전화 앞에 멈춰 섰다.

생각대로 전화는 사부인이 직접 받았다.


“접니다,  사부인...” 


“아이구, 저는 또 누구시라고.  귀한 안부 주셨습니다.” 


“사부인.... 건강하시지요?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사시면서 자식들 효도도 받으시구요.

 그럼요, 건강하셔야지요.

 아무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이젠 더 안부 못 여쭐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끓고 나온 노인은 겨우 방향을 잡고는 

전에 아들이 갇혀 있던 감옥 쪽을 향해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살았다. 정말 너무 오래...’




작가 이순원 (강원도 강릉, 1958.05.02.~)

    - 등단 : 1985년 단편소설 [소]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