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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07년 10.4 선언

2018-11-15

한반도 리포트

ⓒ KBS News

지난 달 5일, 평양에서 10·4 선언 1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4 선언을 합의한 지 11년 만에 남과 북이 처음으로 가진 공동 기념 행사였다. 3차례의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되는 등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원년이 된 올해, 남북이 10·4 선언을 기념하고, 이어가려는 뜻은 평화와 번영의 길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향한 순간들>, 오늘은 남북 평화의 준거점이 된 2007년 10·4 선언을 따라가 본다


7년만에 가진 2007년 남북정상회담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7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갖기 위해서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방북 일정 둘째 날인 10월 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 회담을 가졌다. 당시 정상회담에서는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골자로 광범위한 의제를 논의했다. 특히 6·15 공동선언에는 담기지 않았던 한반도 비핵화를 주요 의제로 다루며 정상회담이 열린 10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서 북한은 2007년 안에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를 완료하고,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합의가 도출되자 남북정상회담은 더 밀도 있게 진행됐다. 


마침내 타결한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타결지은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이른바 10·4 선언은 모두 10개 항으로 이루어졌다. 

정치·화해, 평화, 경제협력, 사회문화, 인도 분야 등 40여의 의제를 담은 10·4 선언은 6·15 공동선언 적극 구현, 남북 관계에 상호 존중과 신뢰 구축, 군사적 적대 관계 종식,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추진,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적극 활성화,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 이산가족 상봉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중 두 정상이 선언을 통해 명문화한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과 한반도 평화 보장을 위한 협력은 그동안 전면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군사문제,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는 계기가 됐다. 


남북정상회담 결실을 맺기에는 부족했던 시간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종료를 4개월여 앞두고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은 결실을 맺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할 경우 경제 협력에 적극 나서겠다는 구상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북한의 반발을 사면서 관계는 냉각됐다. 게다가 천안함, 연평도 포격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10여 년간 남북 정상은 마주하지 않았다. 2박 3일간의 정상회담 일정을 마무리한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악수를 나누며 자주 만나자고 했지만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10·4 선언은 올해 판문점 선언으로 다시 살아났다. 


한반도 평화의 발판이 된 10‧4 선언

10·4 선언으로 이루려고 했던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길이 판문점 선언에 오롯이 담겨 있다. 10·4 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와 연내 종전선언, 남북간 경제 협력 등을 담은 판문점 선언의 밑그림으로 한반도가 평화로 가는 길의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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