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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략적 요충지 ‘강동 6주’

2014-06-07

고려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에게 강동 6주를 내준 거란은 이후 강동 6주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려에서 반환을 요구한다.
이를 거절한 고려를 2차례나 침공하는데... 강동 6주의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에 대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살펴본다.

압록강에서 서해로 가는 길목
강동 6주는 압록강 유역의 6개 성 지역을 말하는데 압록강에서 서해로 가는 길목이다. 거란이 동북 지역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 원산 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동아시아 경제 장악을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했다. 뒤 늦게 강동 6주의 중요성을 깨달은 거란은 줄곧 고려에게 반환을 요구하지만 고려는 거부했고 993년의 2차 침공, 1010년에서 1019년까지 3차 침공이 이어졌다.

강동 6주를 거점으로 거란 물리쳐
거란의 침공에 맞서 고려는 강동 6주를 거점으로 요새를 구축하고 강감찬 장군은 구주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거란을 섬멸하는 전공을 세웠다. 1231년 몽골의 침공에서도 고려는 구주성에서 승리를 거둔다.

송, 거란, 여진, 고려의 무역 중심지
강동 6주는 송, 거란, 여진, 고려의 무역 중심지이기도 했다.
적대적이던 송과 거란은 직접적인 무역을 못하고 강동 6주에서 고려, 여진을 통해 필요한 물품의 거래를 했다. 동아시아의 교역 중심지가 강동 6주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는 송과 거란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주로 했다. 오늘날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중계무역상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강동 6주는 전략적 요충지, 경제 중심지, 무역 중심지로 동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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