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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2019-12-11

뉴스

ⓒYONHAP News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50분 숙환으로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을 재계 2위로 성장시키면서 ‘세계경영 신화’를 창조했으나 외환위기 여파로 몰락한 후 주로 베트남에서 지내다가 지난해 말 건강 악화로 귀국, 치료를 받아왔다.


김우중 별세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학교 부속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 만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했으며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주대병원은 김 전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세운 병원이다.

김 전 회장은 1936년 대구 출생으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란 저서로도 유명하다. 

일찍이 세계 진출을 강조, ‘세계 경영’의 신화를 만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추앙받았으나 외환위기 직후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추락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김우중의 세계 경영

김 전 회장의 제주도 지사를 지낸 부친이 납북된 후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당시 최고 명문으로 꼽히던 경기중, 경기고, 연세대 경제학과에서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1966년까지 섬유회사에서 일하다 만 30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 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김 회장의 사업 이력은 고도 성장기 한국의 경제사를 압축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 당시 삼성 현대 등 한국의 주요기업들이 제조업이나 토목 건설 등에 주력할 때 대우는 무역으로 눈을 돌렸다. 김 전 회장의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린 데 이어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시장을 넓혀 큰 성공을 거뒀다. 

1969년에는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세웠고, 1975년에는 시대로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열었다. 이로써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이후 건설, 전자, 조선 자동차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종합 그룹의 면모를 갖춰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올라 세계경영을 내걸고 그룹을 확장, 자산규모 재계 2위로 키웠다. 


공과

김 전회장의 경영 방식은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세계진출로 요약된다. 이것이 경제개발과 고도성장 전략과 맞아 떨어지면서 대우그룹은 급성장하고, 한국 경제성장에도 큰 기여를 했다.

특히 199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한 것은 큰 공로로 꼽힌다. 이른바 ‘신흥국 출신 최대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룹해체 전해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액 1천323억 달러의 14%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이 구조조정 등 긴축하던 것과 달리 오히려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고, 이것이 결국 파국을 불러왔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차입이 41조원 대 사상 최대 분식회계 사건으로 비화됐고, 결국 그룹은 해체되고 말았다.

김 전 회장은 그룹 해체 후 주로 베트남에 머물면서 세계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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