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이슈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2021-11-24

뉴스

ⓒYONHAP News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군사 쿠데타 동지이자 정치적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28일 만의 일로 이로써 5·18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의  두 책임자가 모두 사라지고, 역사의 한 장(章) 마무리된 셈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고인은 1980년 8월부터 1988년 2월까지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내란 뇌물수수 등의 죄목으로 옥살이를 하다가 특사로 풀려나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생활해왔다. 

전 전대통령은 최근까지 알츠하이머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등 지병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망 당일 아침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오전 8시 55분께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 12분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고인이 회고록에서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그냥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고 남긴 내용이 사실상의 유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소 “‘나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뿌려라’라고 말씀하셨고, 가족들은 유언에 따라 그대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달리 국가장은 않기로 했으며 장례는 불교식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역사의 궤적

전 전대통령은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6.25 한국전쟁에 자원 참전한 뒤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하고 군(軍)에서 출세,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전 전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사건 수사를 담당하면서 세간에 실세로서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같은 해 12월12일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과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이는 ‘서울의 봄’으로 알려진 1980년 민주화운동을 촉발했다. 신군부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전국적인 민주시위를 진압했고 이는 결국 광주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으로 이어졌다.

이후 같은 해 9월1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임시 기구를 통한 간접선거를 통해 당선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이듬해 다시 개헌을 통해 간접선거 7년 단임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재임기간 프로야구 창설 등 스포츠와 문화 분야에 공을 들이고,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등 글로벌 3저 호황에 힘입어 물가를 잡고 주춤했던 고성장을 회복하는 등 나름대로 치적을 쌓았다. 이 외에도 야간 통행금지 해제, 최저임금제 도입, 전국민 의료보험 기틀 마련 등도 전두환 시대인 5공화국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언론 통폐합, 시민․노동운동 탄압 등 철권통치와 뇌물 사건 등 각종 비리에다 5.18 유혈진압의 ‘원죄’를 씻지 못하고 최악의 독재자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1988년 퇴임 후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 재산 헌납을 발표하고 백담사에 칩거하는 등의 제스처를 보였으나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1996년 내란 뇌물수수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무기징역 감형을 거쳐 1997년 12월 특사로 석방됐다.


역사적 과오

전 전대통령은 끝까지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면서 유혈진압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비록 치적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인 과오에 그 치적은 모두 가려지고도 남음이 있다.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국가장도 치러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