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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민 120주년

2022-12-21

뉴스

ⓒKBS News

근대 한인의 해외 이민이 시작된 지 120년을 맞았다.

1902년 12월22일 인천항에서 하와이로 떠난 제1세대 이주민은 오늘날 180개국 732만 명을 헤아린다.


디아스포라의 역사

첫 이민단 중 하와이 땅을 밟은 사람은 86명이었으며 이후 1905년까지 하와이로 떠난 이민단은 64회 7천400여 명에 달했다.

초기 하와이 이민자의 삶은 비참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심지어 채찍질까지 당하는 사실상 노예 노동에 시달렸던 것이다.

이민 1세대의 정착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이른바 ‘사진신부’다. 사진신부란 남편감의 사진만으로 중매, 결혼을 위해 하와이로 건너온 용감한 여성들을 말한다. 이들 7백여 명에 달하는 사진신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키워내면서 하와이 이민 1세대를 일궈냈다. 이들 이민 1세대의 후손들이 일부는 하와이에 남아서, 또 다른 일부는 미국 본토로 이주해서 오늘날 미국 내 한인 사회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맞으면서 식민지배 횡포를 피해,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의 만주개발을 위한 집단 이주에 동원돼 해외 이주의 물결이 이어졌다. 이주 물결은 크게 세 갈래였다. 첫째는 자발적 이주, 둘째는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 셋째는 독립운동가 등 일제의 탄압을 피한 도피 등이었다. 이주 지역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지였고, 당연히 일본 본토로의 이주도 많이 이뤄졌다. 이것이 미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지의 한인사회 모태가 됐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전쟁고아나 미군과 결혼한 여성 등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해외 이민을 떠나는 사례가 많았다. 또 1955년 시작된 해외입양을 통해 지금까지 20만 명이 넘는 아동들이 미국은 몰론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현대적 이민 물결을 가속화시킨 계기는 1962년 해외이민법 제정이다. 당시 저개발과 높은 인구밀도에 따른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로 국민의 해외 진출을 장려한 이 정책으로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등지로 농업 이민 행렬이 이어졌다. 또 1963년부터는 약 8천 명의 광부와 1만 명의 간호사들이 독일로 이주했다.

해외 이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감소세를 보였으나 오늘날 학업 취업 창업 등의 이주가 다시 활발히 계속되고 있다.


재외동포 사회

이민자의 후손들은 세계 각국 정·재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면서 모국의 발전과 위상 제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개발기 재외동포들의 아낌없는 기부와 투자는 고국의 산업화에 큰 밑거름이 됐다. 이들은 고향에 고아원과 학교, 기업을 설립하기도 하고, 한국산 제품을 거주국으로 수입하는 등 교육과 산업화에 기여했다. 최근에는 정치적 성장도 두드러진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사례는 정계에서는 미국의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 ‘4인방’ 미셸 박 스틸,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영 김, 앤디 김 의원 등과 뉴질랜드의 5선 멜리사 리 의원 등이 있다.

재계에는 재일동포 3세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유명하다. 이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유력한 기업인으로 맹활약하는 한인들은 거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한상 네트워크를 구축, 모국에 대한 지원에도 소홀함이 없다.

732만여 명을 헤아리는 ‘디아스포라 한인’들은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치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러시아에서 ‘되돌아 온’ 이민자의 후손들을 배척하는 시각도 존재하는 등 재외 동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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