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장애인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스포츠 경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즐기는 법도 잘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종종 그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곤 합니다. 이번 리우 올림픽은 올림픽 120년 역사에서 최초로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린 올림픽이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개최되기 전부터 브라질의 국가원수 부재 사태, 치안 불안정, 지카바이러스 창궐 등등 개최지를 둘러싼 문제점들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죠. 하지만 스포츠 축제에서 더욱 사람들을 경악시킨 건 스포츠 정신에 찬물을 끼얹는 대규모 도핑 사건이었습니다.
최근 대규모 도핑 사건의 발단
발단은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세계반도핑기구(WADA) 산하 러시아 지부에서 근무했던 검사관과 러시아 육상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그의 아내가 러시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국 육상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투여했다는 양심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에 세계반도핑기구는 러시아 선수단을 대상으로 대규모로 엄격한 도핑 테스트에 들어갔고, 그들의 주장이 허풍이나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이전에도 종종 선수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해 적발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선수 개인의 지나친 경쟁 의식이 불러온 잘못된 선택이었던데 반해 이 경우는 국가가 나서서 조직적으로 시도한 일이라 더욱 충격이 컸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반도핑기구는 IOC에 러시아 선수단 전원을 올림픽 출전 금지 시킬 것을 IOC에 권고했지만, IOC는 한 발 물러서 최종 검사에서 적발된 선수만을 제외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도 총 389명의 선수들 중에 118명의 출전이 금지되었고, 올림픽이 끝난 직후 이루어지고 있는 패럴림픽에는 전원 출전 금지가 결정되었습니다.
도핑의 유래
도핑(doping)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18세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전통춤을 출 때 기분을 고양시키기 위해 마시던 술의 일종인 dop에서 유래된다는 설도 있고, 범죄자들이 사용하던 일종의 환각제를 가리키던 속어인 doop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도핑이란, 주로 운동선수들이 경기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사실 도핑의 역사는 운동경기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근대 이전에 치러졌던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이 환각성분이 있는 버섯이나 흰독말풀, 곰팡이가 핀 무화과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승리자에게는 승리의 기쁨과 함께 대중적 인기와 물질적 보상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기에,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물질들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법이었죠.
근대에 와서도 그 유혹은 여전했습니다. 그리고 현대 의학의 발전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1889년 프랑스의 생리학자 찰스 브라운은 쇠약해진 남성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치료법을 연구하던 중에, 동물의 고환 추출물을 주입하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회복되며,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오스카 조스는 이 추출물을 선수들에게 주입하면 근육의 힘이 증강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합니다. 이는 이 추출물 속에 들어 있던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일종으로 남성의 고환에서 주로 분비되고, 흔히 ‘남자다움’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남성호르몬’이라고도 불립니다. 사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이 남성다운 몸과 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물질입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유로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지 않는 이들은,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으로써의 정체성을 갖고 살기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아나볼릭-안드로게닌 스테로이드(AAS, anabolic-androgenic steroid) 흔히 아나볼릭이라고 불리는 합성 테스토스테론입니다. ASS는 사람의 몸에서 테스토스테론과 동일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AAS를 주입받은 이들의 몸은 근육이 늘고 체모가 자라고 성대가 굵어지면서 남성다운 신체적 특징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AAS는 체내의 단백 동화 현상을 활성화시켜 근육의 양과 강도를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집니다. 그래서 ASS는 지나치게 체중이 감소한 환자나 신부전 등으로 영양 공급이 부족할 수 있는 환자들에게 근육을 늘려 건강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목적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극심한 기아와 굶주림으로 아사 위기에 놓인 사람들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했더니 체중 증가와 체력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는 연구 보도도 있습니다. AAS가 근육의 양을 늘려줄 뿐 아니라 강도도 강화시켜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AAS에 눈독을 들이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났지요. 바로 치열한 몸의 격전장에서 경쟁하는 스포츠 선수들이었습니다.
사실 늘 날이 선 경쟁 속에 살아가는 직업 스포츠 선수들이 신체가 가진 한계점을 높이기 위해 약물을 사용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악습이었지만, 승리에 대한 욕구가 과학기술과 만나자 그 파장은 훨씬 더 증폭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경기력을 향상시키준다는 약물들은 선수들 사이에서 ‘드러내지는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도핑의 부작용
암암리에 남용되던 약물에 본격적인 제제가 가해지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들어서였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가 흥분제 과다복용의 부작용으로 경기 도중 급사하는 사고가 일어났거든요. 특히나 이 사건의 경우, 해당 경기가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상태였기에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요. 이 사건을 계기로 선수들 사이의 약물 복용이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것을 감지한 스포츠위원회는 이후 공식적인 ‘반도핑 규정’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한 번 뿌리내린 약물의 그늘은 매우 깊고 어두워서 쉽게 제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냉전시대 동독은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자 정부가 나서서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 특히 여성선수들에게조차도 ASS를 조직적으로 투여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동독 투포환 선수였던 하이디 크리거입니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하이디는 더 좋은 결과를 바라는 동독 정부에 의해 ASS를 지속적으로 투여받다가 이 부작용으로 인해 신체가 점점 남성화되자 성적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다가 결국 성전환 수술을 받아 현재는 안드레아스 크리거라는 이름의 남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더욱 비극인 것은 이 사건은 정부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ASS를 투여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점점 자신의 몸이 남자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던 20살 젊은 여성이 느꼈을 혼란과 당황스러움은 얼마나 컸을까요. 이에 스포츠계는 좀더 강력한 제제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1999년 강력한 제제 수단을 가진 ‘세계반도핑기구’를 출범시켜 엄격한 도핑 테스트를 실시하게 됩니다.
스포츠 정신과 반도핑 규정
흔히 많은 이들이 반도핑 규정에 의해 스포츠 선수들의 약물 복용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 하는 숭고한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반도핑기구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은 스포츠 정신이 아니라 선수들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스포츠계에서는 그간 젊고 창창한 유망주들이 한때의 유혹에 못 이겨 금지약물에 손을 댔다가 폐인이 되거나 혹은 목숨까지 잃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추상같이 엄격한 도핑 규정은 아직 미래가 창창한 젊은 선수들이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 자체를 통째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거칠지만 진심어린 보호구인 셈이죠. .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건강한 마음가짐이야 말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기본임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