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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에 힘써왔던 고 이희호 여사의 삶

2019-06-13

한반도 리포트

© YONHAP News

(장례위원회 김성재 집행위원장) 1초 이희호 여사님께서 6월 10일 저녁 11시 37분 소천하셨습니다. 이희호 여사님께서는 두 가지 유언을 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부딪혀 싸운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2000년,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서 숱한 역사의 현장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하며 남북한 화해와 협력, 평화 통일을 꿈꿔온 고인의 삶을 돌아봅니다.

시사평론가, 이종훈 박사입니다.

  

<이종훈. 남> 이희호 여사는 사실은 우리나라 1세대 여성운동가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창시절부터 여성운동을 했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결혼을 하면서 어떻게 보면 인생경로가 좀 많이 바뀌었다. 그 이후에 김 전 대통령하고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하셨고 김대중 대통령도 그렇게 평가를 하셨지만 정치적 동지로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산증인으로 일생을 보내셨고 영부인으로서도 또 굉장히 인권이라든가 정의라든가 또 여성계 활동관련해서 많은 기여를 하셨죠.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북한을 방문을 하시면서 남북한 관계 개선에 나름 기여를 하시려고 애를 많이 쓰셨던 그런 경력을 가지고 계시죠. 


1922년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와 YWCA 총무로 사회 활동을 했습니다.

여성 인권에 앞장서던 이희호 여사는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하면서 함께 역사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1972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망명, 납치, 구금, 사형선고, 다시 망명으로 이어진 남편의 고난을 함께 하면서 내조자를 넘어 정치적 동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부인 시절, 이희호 여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하며 한반도 평화 조성에 힘썼고,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조문을 위해 방북,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났습니다.


<이종훈. 남> 그 당시 방북은 일종의 답방형식이었는데요. 2009년 8월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를 하시고 그 당시에 북한쪽에서 조문단을 파견을 했습니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중심으로 해서 6명으로 대규모 조문단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답의 차원에서.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에 북한으로 직접 올라가셔서 조문을 하셨던 거구요. 그 때 이제 사진으로도 우리가 많이 봤습니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하고 직접 만나는 그런 장면들이 있었구요. 그 때 조의를 표하고, 돌아오면서 그것이 이제 곧바로 어떤 남북정상회담이라든가 그런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찌됐건 남북관계가 끈을 유지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셨고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실제로 추진은 했었죠. 성사는 안 됐는데 그 뒷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그 과정에서 이희호 여사가 나름 역할을 하려고 애를 많이 썼던 것으로 전해지곤 있습니다.


2011년 12월 26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에 방문한 이희호 여사. 당시 북측은 김성혜 조평통 부장 등 12명이 개성까지 나오는 등 최고의 예우로 이 여사와 조문단을 맞이했습니다.

이를 통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으로 단절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 이희호 여사는 2015년, 또 한 차례 방북했습니다.

   

<이종훈. 남> 2014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 때도 이 여사가 추모 화환하고 친서를 북한에 보냈구요 2015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희호 여사를 초대를 합니다. 그래서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 했구요. 사실은 이희호 여사는 이런 식으로 남북한 관계 개선에 또 남편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위원장 사이의 합의를 했던 6.15 공동선언 그것을 어떻게 좀 성사를 시키려고 일생동안 애를 많이 쓰신 것으로 이렇게 봐야 되겠습니다.


당시의 방북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초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여사가 김정일 위원장의 3주기를 맞아 추모의 뜻을 보내자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로 화답한 겁니다.

초청을 받은 이 여사는 당시, 93세의 고령이었지만 평양산원, 옥류아동병원 등을 방문하고 어린이용 털모자와 의약품 등을 전달했습니다.

자신을 초청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희호 여사와 북한의 인연은 각별한 만큼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지에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이종훈. 남> 이희호 여사 장례위원회쪽에서 북측에 부고를 했죠. 그래서 그에 대해서 북한이 어떻게 반응을 보일지 관심사였습니다. 어쩌면 이번에도 조문단을 파견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있었는데 조문단은 파견하지 않고 조화와 조전만 전달했습니다. 사실은 이번에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을 했다면 뭔가 남북한 관계의 교착상태를 돌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좀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한 조문단이 왔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방문을 했고 김정일 당시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만약에 북한의 고위급 조문단이 왔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봐야 되겠죠. 그러면 남북정상회담 관련해서 뭔가 의지를 밝히는 그런 내용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예상이 되는데 그런 기회는 일단은 오지 않는 것 같구요 남북 정상회담 관련해서는 최근에 개최설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지속적으로 접촉이 있기 때문에 뭔가 좀 반응이 있지 않을까 예상이 되기는 합니다. 


북한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문단을 보냈습니다. 당시 조문단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첫 남북 고위급 대화를 하고,   일정을 하루 연장해 청와대를 예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문단을 파견하는 대신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판문점 통일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했습니다. 기대했던 조문단은 오지 않았지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의 평화 통일을 바란 이희호 여사의 타계 직후, 한반도 상황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종훈. 남> 이희호 여사께서 이번에 유지를 좀 남기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내용을 보게 되면 마지막까지 평화통일을 기원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이셨는데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희호 여사께서 서거하신 이후에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전달했다라는 소식도 들리고 있고 그리고 또 최근에 남북정상회담 관련해서도 개최설도 또 불거지고 있고. 그래서 조만간 이희호 여사의 바람대로 뭔가 남북한 관계, 그리고 북미관계도 좀 전환점이 마련되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구요. 뭐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남북정상회담을 벌써 3차례나 갖지 않았습니까? 이제 이번 4차 정상회담이 만약에 이루어진다면 이것이 3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연결이 되면서 뭔가 결실을 낳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그 부분도 우리가 관심있게 지켜봐야 겠습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것으로 확인되면서 북한이 중단했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4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빈 방문 중인 핀란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남북 간, 북미 간 대화 재개를 믿는다.”고 말했는데요.

냉전 한반도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은 통일 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 고인의 삶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간절한 통일의 염원은 남북 화해에 전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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