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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판문점 역사

# 클로즈업 북한 l 2020-11-12

목요진단 한반도

ⓒ YONHAP News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판문점 견학이 11월 6일부터 재개됐다. 지난해 10월 정부와 유엔사가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방지 차원에서 판문점 견학 중단을 결정한 지 1년여 만이다. 판문점의 역사와 그 의미를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봉영식 박사와 자세히 알아본다. 


11월 4일 80명 규모로 판문점 시범 견학 실시

이번에 재개된 판문점 견학은 견학 신청 창구가 일원화되고, 신청 기간도 변경되는 등 절차가 대폭 간소화됐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봉영식 박사의 설명을 들어본다. 


“이인영 민주당 전 대표가 통일부 장관이 되면서 창조적인 방법으로 작은 것부터 남북협력의 물꼬를 트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일환의 하나로 통일부가 지난 10월 19일 아프리카 돼지열병과 코로나 19로 중단됐던 판문점 견학을 11월 6일부터 재개한다고 밝혔죠. 그래서 지난 4일에는 80명 규모로 판문점 시범 견학이 실시 됐고요. 일단 견학 신청 절차가 대폭 간소화 됐습니다. 통일부 산하의 판문점 견학 지원센터를 설치했는데, 이것은 이전까지 국정원, 국방부, 통일부로 나뉘어져 있던 신청 창구를 일원화 한 것이죠. 견학 신청 기간도 예전에는 최소 60일 전이었는데, 2주전으로 줄었고, 신청 가능한 연령도 만 10세 이상에서 8세 이상으로 낮춰 초등학교 저학년도 견학할 수 있게 됐고, 예전에는 단체 견학만 허용했어요. 30명에서 40명 규모로. 하지만, 이제는 개인과 가족단위로 견학이 가능해져 보다 많은 사람이 쉽게 판문점을 견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판문점의 원래 이름은 ‘널문리 주막마을’

판문점은 처음부터 이름이 '판문점'이었을까? 판문점의 원래 이름은 '널문리 주막마을'이었다. 이곳은 경기도 서북쪽에 위치한 농촌 마을로 널빤지로 된 문과 다리가 있어서 '널문리'로 불렸다. 조용했던 이 마을에서 6·25 전쟁 휴전협상이 이뤄지면서 판문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판문점 회담장은 단순히 천막만 걸어둔 허름한 건물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휴전이 장기화되면서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과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이 항구적인 건물로 바뀌었고, 1965년에 '자유의 집'과 1968년에 '판문각' 등 콘크리트 건물도 지어졌다. 

1980년대 들어 남북대화의 빈도가 잦아지면서 남북이 대화를 위해 남측에서는 '평화의 집', 북측에는 '통일각'을 건축했다.


“제일 상징적인 것은 아무래도 공동경비구역 JSA 중앙에 있는 파란색 건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이겠죠. 그 남쪽에는 자유의 집이 있고, 북측에는 판문각이 대칭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옆으로 각각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원래는 남북회담 시설용으로 지어진 남측의 평화의 집과 북측 통일각이 있습니다. 남측에 있는 자유의 집은 북한의 판문각에 대응되는 건물인데요. 주로 남북 간의 연락 업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1998년 7월 9일에 보수해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평화의 집은 지상 3층 규모의 건물로 1층에 기자실과 소회의실, 2층에 회담장과 대기실, 3층에는 대회의실과 소회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바로 이곳에서 열렸죠.”


과거, 제약 없이 남과 북의 땅을 오가기도...

오늘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상징은 남측과 북측이 대치 상태로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1953년 7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판문점 가운데로 '군사분계선'이 지나갔지만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군사분계선을 의미하는 철책이 없었기 때문에 남북 관계자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남과 북의 땅을 오갔다. 심지어 양측 장병들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180도 바뀌게 된 계기는 1976년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다.


“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와 북한군간의 시비가 생겼는데, 그 때가 1976년, 소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라고 해서 두 명의 미군 장교가 도끼로 북한군에 의해 상해를 입는, 그래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됐고, 공동경비구역 JSA 내에 군사분계선이 설치되었죠. 그리고 충돌 방지를 위해 폭 50cm, 그리고 높이 5cm의 콘크리트 연석이 설치되면서 자유로운 왕래가 금지된 것이죠.”


그러나 판문점이 남북 간의 적대적 공간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판문점은 남북 간의 직접적인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이자 상호 왕래하는 지점으로 이용돼 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첫 회담을 한 지 한달 만에 2018년 5월 26일 두 시간 동안 판문점 통일각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던 모습은 우리 국민의 가슴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판문점, 남북간 자유로운 왕래를 실현하는 초석이 되길...

조용하고 작은 주막마을이었지만 휴전회담 장소로 역사적인 이름을 갖게 된 판문점. 판문점은 남북 간의 가슴 아픈 적대적 역사와 희망찬 교류 협력의 역사가 모두 녹아있는 장소이다. 

이번 달부터 판문점 견학이 재개되면서 많은 방문객들이 평화의 현장을 찾을 것이다. 판문점 선언과 군사 분야의 합의서대로 판문점이 남북간 자유 왕래를 실현하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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