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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 일반

  •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을 말한다. 북한은 1990년대 전반기에도 핵무기 개발 시도가 드러나(1차 북한핵위기) 미국과 1년여 협상 끝에 1995년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 원자로를 건설해 줌으로써 에너지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를 체결함으로써 문제를 일단락지었다.
    그러나 북한은 다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것이 미국에 의해 탐지돼 문제가 불거진 것이 이른바 2차 북한핵위기이다. 이 문제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 북한 관계자들과 회담을 갖고 추궁한 끝에 북한 측이 인정함으로써 공식 현안으로 떠올랐다. 북한은 경수로 건설 지연 등으로 미국 측이 먼저 '제네바 합의'를 깨뜨렸다고 주장하고,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몰래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있다.
  • 체제안전보장이 첫째 이유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미국을 두려워한다. 미국 역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분류해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을 만큼 경계한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목격하면서 다음 차례는 북한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미국이 섣불리 군사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또한 협상 테이블에서 입장을 강화시켜준다는 점이다.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은 결국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완전히 확보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핵무기 보유라는 것이 북한의 인식이다.
    즉 핵무기 개발이 미국을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안전도 보장받고 여러가지 지원 등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국가 핵심 전략의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첫째는 핵확산 방지, 둘째는 미국의 안보 위협 제거가 그 이유다. 핵확산 방지는, 최근 들어서는 대량파괴무기(WMD: 확산 방지로 개념이 확대됐다. 또 9.11테러 이후에는 미국의 안보 문제에 있어서 테러와의 전쟁이 최우선순위로 떠오르면서 대량파괴무기(또는 대량파괴무기, 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확산 방지가 미국의 국가적 전략목표로 떠올랐다. 즉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등이 테러조직의 손에 흘러들가는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따라서 이는 미국의 최대 안보 위협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지 않아도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돼 있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미국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된다. 게다가 북한이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 한편 핵이나 생화학 탄두를 장착을 능력을 갖춰나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 1993년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혹 속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촉발, 1994년 6월에는 전쟁위기로까지 치달았으나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 간의 협상으로 제네바 합의가 체결돼 해결됐다. 북한은 1992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안전조치협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IAEA가 여섯 차례의 사찰을 실시한 결과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이 수㎏ 추출됐을 것으로 추정돼 당초 북한이 IAEA에 신고한 추출량 90g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이에 IAEA는 특별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은 이를 거부하면서 NPT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1년 가까이 진행된 협상에서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 1994년 6월에는 전쟁위기로까지 치달았다. 이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金日成)과 북미 회담 재개에 합의하면서 핵문제는 극적으로 해결국면을 마련했다. 이후 미국과 북한 사이에 회담이 진행돼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로버트 갈루치 미국 핵담당 대사와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이 북한에 경수로 원자로를 건설하고 중유를 제공하는 대신 북한은 핵 활동을 동결키로 하는 제네바 합의를 체결함으로써 사태는 마무리됐다.
  •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비롯된 이른바 1차 북한 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과 북한 간의 양자합의. 1994년 10월21일 로버트 갈루치 미국 핵담당 대사와 강석주 (姜錫柱)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이 양측 대표로 체결했다. 북한의 핵활동 동결과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수로 원자로 제공이 핵심 내용.
    '제네바 합의'는 일차적으로 북한의 핵활동 중지가 핵심이지만, 이를 위해 북한과 미국간의 포괄적인 관계의 기본 틀을 규정한 것이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① 경수로 제공 - 미국은 2003년을 목표로 2000MWe 용량의 경수로 발전소를 북한에 제공하고, 1호 경수로발전소 완공시까지 난방 및 발전용 중유를 매년 50만t 수준으로 지원한다. 그 대신 북한은 흑연감속로 및 관련시설(영변핵시설)을 동결한 뒤 경수로발전소가 최종 완공되면 이를 해체한다.

    ② 북미 정치 ∙ 경제관계 정상화 - 합의문 서명 후 3개월 내에 통신 및 금융거래를 포함해 무역, 투자 장벽을 완화한다. 또 상대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진전 상황에 따라 대사급으로 격상한다.

    ③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북한을 위협하지도 않아야하며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한다.

    ④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 강화를 위한 협력 - 북한은 NPT에 잔류하고 핵안전협정을 이행하며 `경수로 공급협정`이 서명되는 즉시 핵시설에 대한 IAEA의 핵사찰을 수용한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구성되고 금호지구 경수로 기반 시설공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2003년 제임스 켈리 미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 북한의 비밀핵무기개발 프로그램 의혹을 추궁하고, 북한이 이를 시인하면서 '제네바 합의'는 사실상 파기된 상태가 됐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의 이면에서 핵무기 개발을 계속해온 만큼 북한이 합의를 파기했다는 주장이고, 북한은 공사 지연으로 2003년까지 경수로 제공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연간 200만kw의 전력손실을 입게됐으므로 미국이 합의를 파기했다고 맞섰다. 이른바 2차 북한 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 북한의 원자력 연구 중심 기지라 할 수 있다. 원자력연구센터가 있고, 1986년부터 핵발전소를 가동했다. 북한 핵문제가 거론되면 가장 빈번하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영변 5Mw급 원자로는 흑연감속로 방식으로 천연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한다.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이 용이하다. 바로 이 때문에 영변 핵시설은 제네바 합의에 의해 동결키로 한 것이다. 동결 대상은 5메가와트급 원자로 외에 건설중인 50 및 200 메가와트급 원자로(태천), 재처리시설, 핵연료공장 등이다.
  •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이 흑연감속형원자로 2기를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이 제공하기로 한 경수로 2기를 건설하기 위하여 95년 3월 10일 발족한 국제 컨소시엄. 본부는 미국 뉴욕. 참여국가는 한국 ∙ 미국 ∙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브루나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 벨기에, 필리핀, 타이,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독일 등. 총회, 집행위원회(한국 미국 일본 대표로 구성되며 만장일치제), 사무국(미국인 사무총장 1인, 한국인 및 일본인 부총장 각 1인)으로 구성. 경수로 기술자문 및 법률자문을 위해 미국 회사도 참여한다. 기본적인 목적은 경수로 제공이지만, 대체에너지(중유) 제공, 핵연료봉 처리, 기존 핵시설 해체 등도 담당케 돼 있다. 경수로 제공이 완료되면 해체하도록 돼 있다.
    1997년 8월 19일 북한의 함경남도 신포에서 경수로 건설부지 착공식을 했고, 공사는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해 경수로 건설의 중심역할을 해 왔으나 2차 북한 핵위기가 발생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프로그램 시인으로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고, 북한 핵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을 말한다.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하 비밀핵시설로 의심돼 왔던 금창리의 경우, 미국의 현장 사찰로 일단 핵시설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으나 2002년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핵무기 개발 의혹을 집중 추구해, 결국 북한의 시인을 끌어냈고, 이때부터 다시 북한 핵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어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의 중유공급 중단, 북한의 폐연료봉 인출 등의 상황 악화조치를 주고받은 끝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함(2003.1.10)으로써 핵위기가 본격화됐다. 위기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남북한과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틀이 고안돼 2003년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1차회담이 개최됐다. 6자회담은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중단과 재개를 되풀이하고 있다.

    일지
    일지
    2002. 10. 3 ~ 5 2북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보유 시인
    2002. 11.14 KEDO 대북중유공급중단 발표
    2002. 1 ~ 2. 21 북한, 핵동결 해제조치 개시(원자로, 핵연료제조공장, 방사화학실험실 등 봉인 제거)
    2003. 1. 10 북한, NPT 탈퇴 선언
    2003. 8. 27 ~ 29 제1차 6자회담
    2003. 10. 2 북한, 폐연료봉 8,000개 재처리 완료 발표
    2004. 2. 25 ~ 28 제2차 6자회담
    2004. 6. 23 ~ 26 제3차 6자회담
    2005. 2. 10 북한,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참가 무기중단 선언(외무성 성명)
    2005. 7. 26 ~ 29 제4차 6자회담
  • 2차 북한 핵위기 해결을 위해 고안된 다자간 대화의 틀. 1차 핵위기를 미국과 북한이 양자대화를 통해 풀어냈던 것과 비교된다. 북한은 양자대화를 고집하고,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 의해 경수로 건설 등이 진행되는 뒷면에서 몰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한 북한에 대한 신뢰 문제를 제기하면서 직접대화를 거부한데서 비롯됐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에 나머지 4개 나라가 함께 함으로써 신뢰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모양새를 띄고 있으나 밀도있는 대화로 구체적인 해결책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수석대표는 각국의 차관보 급이 맡고 있으며 국장급의 차석대표는 실무협의회를 통해 구체적인 안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