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송아지 - 황순원

2022-05-17

ⓒ Getty Images Bank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돌이는 아버지가 몇 해를 두고 푼돈을 아껴 모아 사온 송아지가

기껏 이런 것이었나 싶어 적잖이 실망과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 달 남짓 콩깍지와 사초를 잘게 썰은 여물에

콩도 한 줌씩 넣어 먹였더니 좀 송아지 꼴이 돼 갔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군대가 한 차례 밀려 내려왔다가 밀려 올라갔다.

그 동안에 동네에서는 한 집이 비행기 폭격을 맞아

홀랑 날아가는 바람에 일가가 몰살을 당하고,

동네 사람 하나는 포탄 파편에 맞아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됐다.


그리고 군대들이 동네에 들를 적마다 곡식을 모아가고,

닭과 개와 돼지를 잡아가고, 소를 끌어 갔다.


돌이네 집에 와서 송아지를 끌어 가려 했다.

돌이가 송아지 목을 그러안고 놔 주지 않았다.

송아지와 함께 얼마를 질질 끌려갔다.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댔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목을 꼭 안은 채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지독한 놈이라고 하면서 군인이 그냥 가 버렸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전쟁은 생명을 앗아 가는 사건이죠. 자기 목숨 하나도 지키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을 겪으면서도 친구의 생명을 지켜내려고 하는 돌이의 모습이 참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황순원 작가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생명 존중과 관련이 있습니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이 땅의 생명체를 대할 때 우리가 좀 더 배려하고 존중의 마음을 가진다면 결국 인간의 사회도 보다 나아지지 않겠는가. 이 전쟁을 겪으면서 작가의 마음에 그런 생각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것이 용기 있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서 드러난 것입니다.                   



송아지는 쏜살같이 언덕빼기를 내려 이리 달려오는 것이었다.

방죽을 지나 얼음판에 들어섰다.

요행 흙과 재를 깔아 놓은 데로 달려오긴 하지만

저러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돌이는 송아지가 달려오는 쪽으로 마주 걸어 나갔다.


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돌이야, 돌이야 하는 째진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냥 마주 걸어 나가는 돌이의 얼굴은 환히 웃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송아지와 돌이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순간이었다.  


우저적 얼음장이 꺼져 들어갔다.

한동안 송아지는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얼음물 속에서 사지가 말을 안 듣는 듯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한 송아지의 목을 돌이가 그러안고 있었다.




작가 황순원 (1915.03.26. 평안남도 대동 ~2000.09.14.) 

- 등단 : 1931년 소설 [나의 꿈]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