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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랑 언니가 농협에 물건 값을 입금하고 나서
왕상이를 보기 위해 엄마네 식당에 들른 건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왕상이는 할머니 등에 업힌 채 아무것도 모르고
할머니 귀를 잡아 당기고 있었다.
엄마는 마침 배달 할 동태찌개의 간을 보려고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고 있었는데
왕상이가 귀를 잡아 당기니까 뒤로 훌렁 나자빠질 뻔 했다.
형부랑 언니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마한테 뛰어갔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아는 놔두고 가라니까.
그럼 삼십 만원 받고 새벽부터 와서 애 봐줄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려?
내 몸뚱이 성할 때 니들 돈 벌라니까 왜 그려?
아는 놔두고 가! 큰 애야! 최서방!
내 몸뚱이 성할 때.
내가 이 식당이라도 할 때 니들은 돈 벌라니까 왜들 지랄이여, 지랄이!
내가 시방도 시퍼렇게 멀쩡한디”
나는 엄마의 그 혼잣말이 어머니 당신의 남을 세월을 향한 것인지,
저기 저만치 멀어져 가는 큰 딸 내외를 향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왕상이네 세 식구를 태운 소형 오토바이가 저만치 멀어져갔다.
엄마는 그래도 계속 쫒아갔다.
절룩거리며, 부어오른 오른쪽 무릎을 손바닥으로 꾹꾹 내리 누르면서.
# 인터뷰. 전소영
아픈 무릎은 자식들과 손주들을 업어 키우면서 굉장히 고되게 살아왔던 옛엄마들, 또 할머니들의 삶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중 엄마의 염증과 눈물에 많은 의미가 담길 수 있겠죠. 가난했기 때문에 융통성 없이 살아온 자기 과거에 대한 연민 또 이제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남은 삶에 대한 슬픔 이런 것들이 눈물의 근원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국 무릎의 염증과 눈물은 엄마가 그 긴 세월 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 놨던 말들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도 엄마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순간 엄마를 그토록 부끄럽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엄마의 가난이었는지,
가난에 묶여 한 평생을 지내 온 엄마의 융통성 없는 삶이었는지,
이제 당신의 남은 생을 자식에게 의탁해야 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들키게 되어서인지.
어쩌면 엄마는 그저 세월에 뭉개진 무르팍이 문득 서러웠는지도 모른다.
작가 이명랑 (서울특별시, 1973.~ )
- 등단 : 1998년 단편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