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tty Images Bank다락에 비겨 대동강은 너무나 차다.
물이 아니라 유리 같은 것이 부벽루에서도 한 뼘처럼 들여다보인다.
푸르기는 하면서도 마름〔水草〕의 포기포기 흐늘거리는 것,
조약돌 사이사이가 미꾸리라도 한 마리 엎디었기만 하면 숨 쉬는 것까지 보일 듯싶다.
물은 흐르나 소리도 없다.
수도국 다리를 빠져, 청류벽(淸流壁)을 돌아서는 비단필이
훨적 펼쳐진 듯 질펀하게 깔려 나갔는데
하늘과 물은 함께 저녁놀에 물들어 아득한 장미꽃밭으로 사라져 버렸다.
현은 피우던 담배를 내어던지고 저고리 단추를 여미었다.
단풍은 이제부터 익기 시작하나 날씨는 어느덧 손이 시리다.
‘조선 자연은 왜 이다지 슬퍼 보일까?’
- 방송 내용 중 일부
오면서 자동차에서 시가도 가끔 내다보았다.
전에 본 기억이 없는 새 빌딩들이 꽤 많이 늘어섰다.
그 중에 한 가지 인상이 깊은 것은
어느 큰 거리 한 뿌다귀에 벽돌 공장도 아닐 테요 감옥도 아닐 터인데
시뻘건 벽돌만으로, 무슨 큰 분묘(墳墓)와 같이 된 건축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현은 운전사에게 물어 보니, 경찰서라고 했다.
또 한 가지 이상하다 생각한 것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여자들의 머릿수건이다.
“거, 잘 없어졌죠. 인전 평양두 서울과 별루 지지 않습니다.”
운전사는 없어진 이유는 말하지 않고 매우 자긍하는 말투였다.
# 인터뷰. 전소영
평양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쓸쓸한 폐허처럼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일제에 의해서 식민화되면서 고유의 문화를 잃어가는 평양의 모습을 구체적인 상징들, 흰머리 수건 같은 상징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표면적으로만 보면 옛것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소설로도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식민지의 언어와 문화가 소멸되어가는, 일제에 의해서 사라져가는 현상에 대한 아주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있는 것이죠.
현은 평양 여자들의 머릿수건이 보기 좋았었다.
단순하면서도 흰 호접과 같이 살아 보였고,
장미처럼 자연스런 무게로 한 송이 얹힌 댕기는,
그들의 악센트 명랑한 사투리와 함께
‘평양 여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런 아름다움을 그 고장에 와서도 구경하지 못하는 것은,
평양은 또 한 가지 의미에서 폐허라는 서글픔을 주는 것이었다.
작가 이태준 (강원도 철원, 1907.11.04.~?)
- 등단 : 1925년 단편소설 [오몽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