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내용 중 일부 -
“아버지, 왜 돌아오셨습니까.
제가 어머니와 양키담배를 골라낸 꿀꿀이 죽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아버지는 어디서 무얼 하셨습니까?
시골의 3류극장에서 소리꾼들의 장단을 맞추고 있었습니까?
아버지는 끝끝내 제 앞에 현신하지 말아야 옳았습니다.
아버지가 우리 가족의 면전에서는 북장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그냥 아버지로 남아있으면 됩니다”
아들에게 아버지 민노인의 북은 고통의 상징이었던 겁니다.
“할아버지 이 북으로 팝송 반주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수경아, 늬 오래비가 붙들려간 게, 나나 이 북과도 관계가 있겠지?
둥 둥 둥 딱 뚝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보다도 궁금한 게 있어요.
오빠와 저와는 네 살 터울이거든요.
그런데 오빠는 할아버지의 북소리에 푹 빠져있고,
솔직히 저는 잡음으로만 들려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그 녀석이 내 역마살을 닮은 것 같아.
역마살과 데모는 어떻게 다를까”
딱 둥둥 뚝.
“할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세요.
제 말은 들은 둥 만 둥 하구요”
손녀의 새살거림을 한 옆으로 제쳐놓으며
민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더 크게 북을 두드렸다.
#인터뷰 - 전소영 문학평론가
작중에서 북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세세대의 서로 다른 삶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북은 예술적인 이상만을 쫓아온 삶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 때문에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아버지에게는 북이 철저한 생활인으로의 삶으로 기울어지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또 양쪽을 다 아우르려는 손자에게 있어서 북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디면서도 또 여러 가지 문제들을 더 나은 쪽으로 바꿔 가려는 그 이상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가 최일남 (19732.12.29/ 전라북도 전주)
: 데뷔-1956. 소설 <파양>
수상-2012. 제61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문학부문
1986. 이상문학상 등